[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여자농구의 전성 시대를 위하여” WKBL 안덕수 신임 사무총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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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최서진 기자 |
그 결과 무명 선수에서 우승 감독으로 우뚝 섰고,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WKBL(여자프로농구연맹) 사무총장까지 맡게 됐다.
일본 농구 유학이 흔치 않던 시절, 외롭게 눈물젖은 빵을 먹어가며 첫 도전을 시작했다.
프로 지도자 첫발도 일본에서 뗐다.
그렇게 무명의 농구인은 KB국민은행의 지휘봉을 잡았다.
알려지지 않은 지도자라는 물음표가 바스켓 속에 가득했지만, 이내 KB의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채웠다.
인생 반전을 스스로 일궈낸 그가 이제는 WKBL 신임 사무총장으로 새 도전을 시작한다.
농구 행정가로 변신해 “여자농구 전성시대”를 외치고 있는 안덕수 신임 사무총장을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만났다.
◆도전 또 도전
‘슬램덩크’의 나라지만, 19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농구로 주목받지 못했던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삼일중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 있는 하츠시바고에 진학해 주전으로서 승승장구했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전국대회 결승에 오른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타이틀을 갖기도 했다.
타지에서 경험한 ‘도전자 정신’은 마음 깊숙이 자리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로 성장시켰다.
안 총장은 “지금은 일본 농구를 배우기 위해 가는 어린 친구들이 있지만, 199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보다 농구를 못했기에 일본 농구 유학 케이스가 없었다”며 “오사카에서 3년 연속 우승을 하며 전국대회를 꾸준히 나갔고, 전국대회에서도 상위권에 들었다.
성적이 좋으면 학교에서 더 잘해주셨던 기억이 난다”며 웃었다.
사진=최서진 기자 |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나란히 뛰고 싶다는 열정을 참지 못했다.
실업팀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했다.
안 총장은 “다 선배들이긴 했지만,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삼성전자에 오게 되면서 대단한 사람들과 농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났다”며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삼성에서의 프로 생활은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되돌아봤다.
미래에 은인이 될 선배도 만났다.
박지수의 아버지이자 현재 천안봉서초를 지휘하는 박상관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안 총장은 삼성 입단 당시 팀 내 서열 상위권인 박 감독과 같은 방을 썼다.
안 총장은 ‘방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때는 선배가 무서웠다.
인연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후배들을 유독 잘 챙겨주셨던 선배였고, 열심히 하는 후배에겐 더 애정을 쏟던 선배”라고 설명했다.
방장과 방졸의 인연은 길지 않았으나, 둘의 인연은 향후 ‘은인’으로 이어졌다.
사진=최서진 기자 |
선수 생활을 마치고 대학농구연맹 사무국장으로 행정 경험을 쌓은 뒤, 일본의 샹송화장품 V-매직 코치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안 총장의 인생을 바꿔놓은 순간이었다.
“샹송의 코치를 하면서 한국 여자농구팀들과 연습경기를 하는 등 교류를 이어왔다.
관계자들도 많이 만났었는데, 그 전화는 느낌이 달랐다”고 운을 뗀 안 총장은 “국민은행에서 와줬으면 한다는 전화였다.
나는 한국 여자농구는 모른다고 답했다.
샹송과의 계약 기간도 남아있었다”며 “얼굴이라도 보고 가라는 말씀에 단장님을 뵙고 얘기를 나누고 나왔다.
다시 전화가 오더라. 정식으로 감독직을 제안한다는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고민이 많았지만, 주변의 도움과 지지 끝에 안 총장은 ‘KB의 10대 감독’이라는 모험을 시작했다.
행운도 따랐다.
부임 첫 해에 ‘뽑기 신’으로 등극했다.
향후 여자농구의 10년을 책임질 슈퍼루키 박지수가 나온 2017 WKBL 드래프트였다.
KB는 14.3%의 낮은 확률에도 1순위 지명권을 갖는 행운을 안았다.
안 총장은 당시 박지수를 지명하며 큰절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사진=최서진 기자 |
박지수가 입단했지만, 그해 승률 5할 미만에 그치며 혹독한 WKBL 감독 신고식을 치렀다.
기회가 온 건 2년 뒤였다.
역대 KB 감독들이 해내지 못했던 WKBL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KB에게도 자신에게도 새역사였다.
박지수뿐만 아니라 외국인선수 카일라 쏜튼, 프렌차이즈 스타 강아정(은퇴)과 심성영(현 우리은행)의 장점을 살리며 역할을 확실하게 나눴다.
더불어 전략, 전술의 조정까지 맞아떨어지면서 안 총장 농구인생의 반전드라마가 쓰였다.
안 총장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내가 감독으로 가능할지 의문점이 많았지만, 선수들과 함께 우승으로 대답했다”며 “새로운 농구의 길을 연 소중했던 순간”이라며 돌아봤다.
무명의 지도자에서 출발했으나 KB의 첫 통합우승을 이끈 안 총장은 명장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사진=최서진 기자 |
영광스러웠지만, 무겁기도 했던 감독직을 내려놓은 후 안 총장은 선한 영향력을 펼쳤다.
해설위원을 맡으면서 ‘안덕수 캠프’를 열어 농구 꿈나무들에게 기회의 땅을 선물했다.
일본에서 선수, 코치 생활을 한 경험으로 일본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했다.
안 총장은 “캠프가 끝나면 몇몇 선수들이 손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정말 보람찼던 기억”이라며 “아이들이 가까운 일본에서 다른 농구를 통해 재미를 느끼고 동기부여를 받아서 꿈을 더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선수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일련의 과정들이 쌓여 기회라는 갚진 결과가 돌아왔다.
지난 10월 WKBL은 “안덕수 신임 사무총장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신상훈 총재의 믿음도 있었으나, 김용두 현 총장의 추천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안 총장의 공식 임기는 2025년 2월부터 시작된다.
안 총장은 “김용두 총장님은 농구 발전을 위해 6년 동안 헌신하신 분이다.
현실을 정말 잘 파악하시는 분이라 배울 점이 많다”며 “이전까지 같이 일한 적은 없으나, 내가 WKBL에 속해 있는 사람 중 하나라는 이유로 좋게 봐주셨다.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공식 임기가 시작된 것은 아니나, 현 총장의 배려 덕에 발로 뛰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행정가로서 일했던 경험도 빛을 발한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대학농구연맹에서 사무국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다.
대진표를 짜는 것조차도 어려워 땀이 삐질삐질 흘렀던 기억이 있다.
당시 컴퓨터부터 회계까지 두루두루 행정 및 운영에 대해 배웠다.
이젠 경험에 경험을 더 할 준비를 마쳤다.
안 신임 총장의 목표는 ‘여자농구 시대의 도래’다.
과거 한국 여자농구는 효녀 종목이라 불렸다.
1984 LA 올림픽 은메달을 비롯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4강 등 올림픽 7회 출전에 빛났다.
하지만 최근 파리올림픽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등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
이어 WKBL의 인기도 떨어졌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안 총장이 ‘중요한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그는 “한국여자농구에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이제부터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6년 아시안게임 결승에 올라야 하고, 아시아선수권 대회 등에서 2028 LA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일본 선수들이 아시아쿼터제로 들어오면서 한국 선수들이 더 자극받길 바라고 성장하길 바란다.
이 과정을 통해 선수들이 성장하고, 대표팀이 성적을 내고, 어린 소녀들이 농구를 싶어하는 순환 구조가 돼야 한다”며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총재님, 구단과 연맹 또는 협회, 미디어까지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서로 도와주면서 같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용인=최서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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