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오래 기다렸던 박찬숙 감독의 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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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기회는 언제 어떻게 올지 모릅니다.
꿈을 잃지 마세요.”

농구. 박찬숙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 감독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다.
삶의 대부분을 코트 위에서 보냈다.
기쁨과 슬픔, 환희, 좌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자이기도 하다.
현역 유니폼을 벗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하다.
늘씬한 체형에 단발머리, 툭 털어지는 운동복 차림까지. 그때 그 모습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서 있는 위치다.
한 팀의 사령탑으로서 새 그림을 그려가는 중이다.
박 감독은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 본다.
다시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하루하루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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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레전드, 쉼 없이 돌아간 시계

박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0㎝ 큰 키에 뛰어난 순발력, 예리한 슈팅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월드 클래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5년 숭의여자고등학교 1학년 시절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1984년 LA올림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기억이다.
주장 완장을 차고 나서 펄펄 날았다.
올림픽 구기 사상 첫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카퍼레이드를 진행했을 정도였다.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이동하며 시민들의 찬사를 받았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에도 바쁘게 움직였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다.
여성 최초의 농구 국가대표 감독에서부터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이사, 경기감독관, 해설위원, 안산시 스포츠 홍보대사 등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끼를 발산, 대중 곁으로 다가갔다.
밑바탕엔 농구를 향한 애정이 있었다.
박 감독은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자농구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하려고 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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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화려함, 그 속에 간직한 꿈

화려한 커리어. 그 가운데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만의 ‘꿈’이 있었다.
감독으로서, 긴 호흡을 가지고 팀을 이끌고 싶었다.
프로 사령탑도 바라봤으나 닿지 않았다.
박 감독은 “국가대표도 이끌어봤지만 내 모든 것을 쏟아 붓기엔 다소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간 총 감독이 돼서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고 싶더라.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도 꿈은 버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지난해 초 서울 서대문구청이 여자농구단을 창단하면서 박 감독에게 초대 지휘봉을 맡겼다.
박 감독은 “이성천 서대문구 구청장님이 정말 큰 결심을 해주셨다.
여자농구 팀을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어딨겠느냐”면서 “이전부터 구청장님께 ‘팀이 만들어진다면 다른 것 다 떠나서 무조건 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약속을 지켰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팀을 맡은 이후로는 여기에만 전념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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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책임감, 때로는 큰 엄마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일궈가야 했다.
박 감독에게도 배움의 연속이었다.
선수 때는 지시에 맞게, 전술을 잘 이행하는 데 중점을 뒀다.
수장이 된 뒤엔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했다.
선수단 개개인의 장단점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박 감독은 “머릿속에 구상한 작품이 있는데, 계획대로 안 되면 겉으로 말은 못해도 속으로 미친다.
벤치가 아니라 지옥”이라면서 “어느 순간 퍼즐이 딱 맞아 떨어지더라. 그때의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끄덕였다.

고충도 많았다.
무엇보다 선수단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급선무였다.
박 감독은 “내가 얼마나 어려웠겠나. ‘연예인 감독님’이라고 하는 선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큰 엄마의 마음으로 다가갔다.
박 감독은 “경기장 안에선 틈을 안 준다.
말도 안하고 잘 웃지도 않는다.
눈빛부터가 다르다고 하더라”고 운을 뗀 뒤 “대신 끝나면 확 달라진다.
같이 밥도 먹고, 때로는 술도 한 잔 한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편안하게 나누곤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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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짜릿함, 또 새로운 영역으로

곧바로 성과가 드러났다.
창단 1년 만에 정상을 맛봤다.
전국실업연맹전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운이 좋았다”고 자세를 낮췄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누구보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박 감독은 “50년 넘게 농구를 하면서 진 기억이 많지 않다.
승부의 세계에선 이겨야 한다고 배웠다”면서 “시작하는 단계지만 그런 마인드를 선수들에게 심어주려 했다.
감독으로서 선수 육성도 중요하지만, 잘해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우승을 경험했지만 또 새로웠다.
그토록 고대하던 감독으로서, 심지어 지도자상까지 거머쥐었다.
박 감독은 “상이란 상은 정말 많이 받아봤는데, 지도자상은 처음이었다”면서 “기분이 정말 남다르더라. 사실 제 실력이 지도자상을 받을 만큼은 아니다.
선수들 덕분이다.
정말 고마웠다”고 미소를 지었다.
40년 만에 카퍼레이드도 재현됐다.
박 감독은 “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선수들에게 더 잘해야겠다 싶더라”고 눈빛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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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책임감, 직접 전하는 희망 메시지

할 일이 많다.
당장의 목표는 트로피 수집이다.
6월 열린 태백시장배도 제패했다.
다음은 10월 전국체전이다.
박 감독은 “우승은 해도 해도 좋은 것 같다”고 껄껄 웃었다.
궁극적으로는 여자농구의 기반을 다져나가는 일이다.
국제대회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아시아컵 2023서 4강 진출에 실패, 파리올림픽 티켓을 놓쳤다.
박 감독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면서 “딱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선배들이 해놓을 것들을 지켜주길 바란다.
무서울 게 뭐가 있는가. 나도 뛰고 있지 않는가.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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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숙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email protected]

이혜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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