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끝이 아니고요, RPM·수직 무브먼트 입니다’ ML는 알려주는데 KBO는 6년째 제자리 [SS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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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척=윤세호 기자] “볼 끝이 좋다.
” “공이 떠오른다”와 같은 추상적인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
KBO리그도 트래킹 데이터를 산출하는 장비가 모든 구장에 설치된 지 오래다.
2018년 2월 삼성을 시작으로 9개 구단이 트랙맨, KIA는 호크아이를 홈구장에 장착해 활용하고 있다.
투수와 타자가 각각 자신이 던진 공과 친 공을 상세히 돌아본다.
경기 전후 태블릿 PC를 통해 트래킹 데이터를 보는 게 습관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가 구단 내부에서만 돈다는 것이다.
숫자와 통계의 생명은 ‘공유’에 있다.
메이저리그(ML)가 2015년부터 통합 데이터 시스템 스탯캐스트를 구축하고 공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홈페이지부터 중계방송, 기사, 유튜브, 소셜미디어까지 하나로 통합된 데이터가 널리 퍼진다.

그 결과 샌디에이고 김하성이 기록한 모든 안타의 타구 속도와 발사각도가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2019년 내셔널리그 평균자책점 2위(2.32)로 맹활약한 당시 LA 다저스 에이스 류현진의 퍼포먼스도 해부하듯 바라볼 수 있다.
선수의 가치를 알리면서 야구의 깊이를 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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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 스탯캐스트의 진가는 지난 17일과 18일 서울시리즈 평가전을 통해 드러났다.
이틀 동안 다저스, 샌디에이고 선수는 물론, 이들을 상대한 한국 야구 대표팀과 키움, LG 선수들의 트래킹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개됐다.

주인공은 두산 신인 김택연. 투구수 11개로 대표팀 류중일 감독은 물론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눈도 사로잡았다.
경기 후 로버츠 감독은 김택연이 다저스 제임스 아웃맨을 헛스윙 삼진 처리한 모습을 뚜렷하게 되새겼다.
그는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시속 92마일로 보였다.
그 공을 시속 95~96마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이 있더라. 정말 인상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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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만했다.
이날 김택연 속구의 분당회전수(RPM)는 ML를 기준으로 삼아도 최상급이었다.
RPM 최고 2483, 평균 2428이 나왔다.
18일 고척돔 마운드에 오른 투수 중 최고를 찍었다.
포심 패스트볼의 경우 회전수가 높을수록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다.
모든 공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지만 회전수가 높으면 덜 떨어진다.

실제로 김택연이 아웃맨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은 속구의 RPM은 2428, 수직 무브먼트는 9인치(22.86㎝)였다.
수직 무브먼트 수치가 적을수록 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포심은 수직 무브먼트 수치가 낮을수록 위력적이다.
빅리그에서 포심 수직 무브먼트가 11인치 이하면 최상급으로 평가받는다.

즉 김택연이 던진 92마일 속구는 일반적인 92마일 속구보다 중력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포수 미트로 꽂혔다.
그 결과 탄착 지점이 보통의 92마일 속구보다 높게 자리했다.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몰린 공이었음에도 아웃맨이 헛스윙을 한 이유다.
이렇게 스탯캐스트를 통해 “볼끝이 좋다”, “공이 떠오른다”로 추상적으로 표현했던 것을 정확하게 숫자로 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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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다.
KBO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시리즈 기간 ML 사무국은 고척돔에 설치된 기존 트래킹 데이터 시스템을 사용 중이라고 한다.
고척돔 트랙맨을 활용해 스탯캐스트를 가동하고 ML 경기와 마찬가지로 실시간으로 수치를 전달하고 있다.
KBO리그도 ML와 같은 스탯캐스트를 가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는 갖춘 셈이다.

문제는 KBO와 데이터 업체의 입장 차이다.
KBO는 멀리 보면 6년 전부터 트래킹 데이터를 포함한 데이터 통합을 추진했다.
2년 전에는 이를 위한 공개 입찰도 진행했다.
하지만 우선 협상 업체로 선정된 트랙맨 측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면서 구장과 중계방송, 기사마다 다른 구속을 전달하는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원한다.
선수가 특히 그렇다.
구속 1, 2㎞를 늘리기 위해 흘린 땀방울을 정확하게 평가받기를 바란다.
지난 17일 샌디에이고전에서 호투한 원태인은 스탯캐스트로 측정된 자신의 구속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같은 날 포심 평균 RPM 2522를 기록한 최준용도 다가오는 시즌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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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서 끝이다.
오는 23일 개막일부터는 같은 공을 던져도 다른 구속과 회전수가 중구난방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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