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호랑이들의 영원한 영웅 ‘무등산 까치’… 김정수가 그리는 제3의 야구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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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의 김정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
프로야구 2024시즌 왕좌에 오른 KIA, 그 덕에 호랑이 군단의 한국시리즈(KS) 12전 12승 불패 신화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숱한 타이거즈 레전드들이 힘을 모아 쌓아온 탑이 여전히 굳건하다.
그중에서도 절대 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가을만 되면 없던 힘도 쏟아져 나왔던 ‘무등산 까치’ 김정수(62)다.
타이거즈의 셀 수 없는 영광을 함께 했던 그는 뜨거웠던 선수, 지도자 시절을 보낸 후에도 여전히 공을 내려놓지 않았다.
60대의 나이로 아직도 사회인 야구를 뛴다.
좌완 사이드암에 가까운 본인만의 독특한 투구 폼도 그대로다.
자신의 이름을 딴 피칭 아카데미에서 유소년 육성에도 힘을 쏟는다.
그의 야구 열정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불타는 중이다.
◆‘무등산 까치’
현역 시절의 김정수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
김정수의 두 번째 이름이 된 ‘까치’는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으로부터 시작됐다.
1980년대 인기리에 연재된 이 만화의 주인공인 오혜성의 별명이 바로 까치였다.
더벅머리에 반항아적인 성격까지 빼닮은 김정수에게도 그 별명이 그대로 전달됐다.
김정수는 “1987년, 전주야구장이었을 거다.
한 스포츠 기자님이 더그아웃에서 다가오더니 ‘만화 봤느냐, 오혜성이라는 캐릭터가 너랑 비슷한데 별명으로 어떠냐’고 하시더라”며 “나쁘게 생각 안 했다.
나도 마운드에 올라가면 강하게 부딪히는 성격이었다.
튀기도 많이 튀었다.
그런 것들이 통하다 보니, 팬들이 자연스럽게 까치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웃었다.
이제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닉네임이다.
그는 “우리 타이거즈 출신들에게 별명이 많이 붙어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광주를 상징하는 무등산이 들어간 별명은 많지 않다.
‘무등산 폭격기(선동열)’랑 ‘무등산 까치’까지 2개 정도다.
그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마음에 든다”고 껄껄 웃었다.
◆가을 DNA
이름보다 많이 불린 까치, 그 앞에는 ‘가을’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따라다닌다.
가을야구, 특히 KS 무대에서 김정수가 선보인 엄청났던 활약들 덕분이다.
1986년 해태에 입단한 그는 1999년까지 14년을 호랑이로 살았다.
그리고 그 기간, 해태의 ‘V2’부터 ‘V9’까지 무려 8번의 KS 우승을 함께 했다.
배영수 SSG 코치와 함께 역대 KS 최다 우승 선수로 남아있다.
끝이 아니다.
KS에서만 7승을 거둬 KS 통산 최다승 1위에 올라있다.
이 외에도 KS 통산 최다 출장 23경기(2위), 최고령 경기 출장(41세3개월1일·2위), KS 단일시즌 3연승(1위) 등 가을과 관련된 기록이 수두룩하다.
‘가을 DNA’의 원조나 다름없었다.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친다.
김정수는 “난 처음부터 강심장이거나, 중압감 있는 경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싸움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며 “그저 그걸 극복할 뿐이다.
그렇게 하나씩 이겨내다 보니 행운이 따라온 것도 컸다.
상황들이 계속 나에게 맞춰지더라. 그런 연속성이 생기니까 팬들 뇌리에도 그렇게 딱 박힌 게 아닌가 싶다”고 미소 지었다.
◆1996년
현역 시절의 김정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뿌리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
8개의 우승반지,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리즈를 물었다.
1986년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대졸 루키였던 그 해, 그는 삼성과의 KS에서 구원과 선발을 오가며 홀로 3승을 빚었다.
신인 최초 KS 최우수선수(MVP) 금자탑이 그를 반겼다.
말 그대로 한국 야구 역사에 남은 시리즈였다.
그러나 김정수가 꼽은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6년이었다.
그는 “운이 좋아서 큰 경기를 많이 치르니 감정이 희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팀 8번째 우승 시즌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시즌”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팀 주장을 맡은 시즌이었다.
중요한 자리였고, 당연히 부담이 있었다.
게다가 당시 선동열이 없는 우리 전력을 향한 평가도 차가웠다.
밖에서 우리를 꼴찌 후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팀에는 좋은 투수들과 야수들이 있었다.
꼭 뭔가 보여주고 싶었던 시즌”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한 기자가 4월에 우리의 부진을 보면서 절대 가을야구 못 간다고 하길래, 내가 우승하겠다며 내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거짓말처럼 반등하면서 보란 듯이 증명하지 않았나. 기자님이 시즌 말미에 미안하다며 내기를 없던 일로 해달라길래 웃으면서 그러자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그는 “우승하고 엄청나게 기쁠 줄 알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엄청난 압박 속에서 보냈던 1년을 돌아보니 허망한 감정도 들었다.
주장으로서 의무를 다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 덕에 그 해가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내가 정작 그 시즌의 KS에서 보여준 건 없다.
하지만 MVP를 받았던 1986년보다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V12’
김정수 전 KIA 코치(왼쪽)가 양현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KIA타이거즈 제공 |
뜨거웠던 현역 시절을 보내고 2003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한화 2군 투수코치를 거쳐 2006년 KIA로 돌아와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스카우트, 전력분석 등 프런트에서도 여러 경험을 쌓았다.
재활군 코치를 맡았던 2019년을 끝으로 팀을 떠났지만, 친정을 향한 애틋함은 여전하다.
올해도 후배들이 수놓은 ‘V12’를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는 “31년 만에 삼성과 맞붙었던 시리즈이지 않았나. 선수시절을 떠올려보면 우리는 일당백들이 모여있고, 삼성은 국가대표 집합소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절대 지고 싶지 않았던 라이벌”이라며 “애들이 참 잘하더라. 이범호 감독 필두로 이겨야 된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타이거즈의 무패 전통이 있지 않나. 전통은 곧 자부심이고 품격이다.
명문구단의 명성을 이어준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세웠다.
이어 “곽도규라는 친구를 보면서 왠지 나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던지는 폼도 얼핏 비슷하더라. 마운드에서 당차게 공을 잘 뿌리고, 팀이 이겼던 4경기에 모두 등판해 2승을 했다더라. 앞으로도 대성할 선수”라며 후배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타이거즈의 무패 전통이 깨지지 않았으면 한다.
KS에서 패하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우승을 많이 하면서 언제나 반대편에 있는 선수들의 표정을 봐왔다.
그것만큼 무거운 감정이 없다.
타이거즈에는 앞으로도 그런 슬픔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제3막
김정수 전 KIA 코치가 자신의 피칭 아카데미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
현역 생활도, 지도자 생활도 모두 마친 지금이지만, 뼛속까지 새겨진 야구와의 인연이 끊어질 리는 만무했다.
광주 모처에서 피칭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은 물론, 주변 지인들과 전남 목포에서 펼쳐지는 사회인야구도 즐기는 중이다.
“아직도 마운드에서 공 뿌리면 110㎞ 정도는 나온다.
우리 리그에서 내 공 잘 못 친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아직도 야구가 재밌다.
포지션은 투수였지만 배트도 열심히 친다.
타율도 5할 정도 된다”며 “현역 막바지에 부상만 없었으면 아직도 공 던졌을지 모른다”는 유쾌한 농담을 건넸다.
김정수 전 KIA 코치(오른쪽 첫 번째)가 자신의 사회인야구 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
그러면서도 유소년 육성에 대한 진중한 철학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는 “요즘 어린 친구들을 보면 구속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
단순히 150㎞ 나온다고 능사가 아니다.
체력과 기본기 등 기초 공사가 잘 되는 게 먼저다.
스피드 건이 아닌 자신의 몸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간 김정수’로 그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물었다.
그는 “예전이야 한번 감독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 내려놓게 되더라. ‘이 정도면 잘 살았지’ 하는 생각도 든다”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조용히 묻혀서 살아가보고 싶기도 하다.
휘황찬란한 꿈은 없다.
일단 이번 주 있을 사회인 야구 경기에서 이기는 게 목표”라고 너털웃음을 띄워 보냈다.
광주=허행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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