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 전 캡틴 지터는 ‘미스터 노벰버’인데… 현 캡틴 저지는 가을만 되면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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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농구(NBA)의 최고 명문 구단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보스턴 셀틱스파와 LA레이커스파로 나뉠 것이다.
셀틱스가 우승횟수 18회로 최다 1위, 레이커스가 17회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반면 미국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최고 명문 구단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일부 보스턴 레드삭스팬들을 제외하면 열이면 열, 이 팀을 언급할 것이다.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이라는 별명을 보유한 뉴욕 양키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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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은 27회로 2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1회)와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많다.
이는 미국 4대 프로스포츠를 통틀어도 최다 챔피언 경력이다.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3연패도 양키스가 1998~2000년에 이뤄낸 것이다.
두 말할 것 없는 최고 명문이다.

이런 명문인 만큼, 양키스의 주장 자리는 특별하다.
맡고 싶다고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팀을 대표하는 상징성, 스타성, 기량 등을 두루 갖춰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양키스의 주장직은 주장감이 없을 때는 공석으로 비어있기도 한다.

양키스 프랜차이즈 유일의 3000안타 기록을 세운 ‘뉴욕의 연인’ 데릭 지터는 2003년부터 은퇴시즌인 2014년까지 양키스의 캡틴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지터가 은퇴한 이후 양키스의 주장 자리는 오래 비어있었고 2023년에야 그 자리의 주인이 생겼다.
현재 양키스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자 메이저리그에서 홈런하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최고의 거포 애런 저지가 2023년부터 양키스의 주장을 맡아 2년째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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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27경기를 뛴 저지는 첫 풀타임 시즌인 2017년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155경기에서 타율 0.284(542타수 154안타) 52홈런 11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1.049를 기록했다.
신인이 50홈런을 넘긴 것은 저지가 역대 최초였다.
신인상은 당연히 만장일치였다.
이후 3년간 부상으로 부침을 겪은 저지는 2021시즌 39홈런으로 부활에 성공했고, 2022년에는 양키스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저지는 2022시즌 157경기에서 타율 0.311(570타수 177안타) 62홈런 131타점 OPS는 무려 1.111. 62홈런은 1961년 로저 매리스가 기록한 아메리칸리그 최다 홈런(61개)를 뛰어넘는 신기록이었다.
wRC+는 무려 206에 달했고,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은 팬그래프닷컴에선 11.1,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론 10.5. 21세기 통틀어 타자 개인의 최고의 단일 시즌이었다.
2021시즌 만장일치 아메리칸리그 MVP인 오타니 쇼헤이를 제치고 생애 첫 정규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오타니가 2023시즌에도 만장일치로 MVP를 탔음을 생각하면 저지가 아니었다면 오타니는 MVP 3연패도 가능했다.
2022시즌 후 양키스와 9년 3억6000만달러, 연평균 400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조건으로 연장계약에 합의했다.
이제 명실상부 양키스는 저지의 팀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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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시즌이 너무 위대해서였을까. 2023시즌엔 또 다시 부상이 발목을 잡으며 106경기 출전에 그쳤다.
106경기를 뛰면서도 37홈런에 75타점을 기록하며 건강하기만 하면 홈런에 관한 한 저지가 최고임을 보여준 시즌이 됐다.

주장 2년차인 2024시즌은 2022시즌에 필적하는 성적을 냈다.
타율 0.322(559타수 180안타)는 커리어 하이다.
생애 두 번째 60홈런 돌파를 가능하게 하는 역대급 페이스로 홈런을 때려냈으나 시즌 막판 기세가 꺾이며 58홈런 144타점 OPS 1.159로 마무리했다.
홈런과 타점, 출루율, 장타율, OPS 모두 아메리칸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 1위였다.
오타니가 전인미답의 영역인 50홈런-50도루 클럽 가입이라는 신기원을 이뤘지만,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는 저지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도 오타니가 아닌 저지의 차지였다.

그러나 신은 저지에게 모든 것을 선물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저지에게 단 하나 약점이 있다면 가을만 되면 정규시즌의 강력함이 1/2 아니 1/3, 1/4로 줄어든다는 것. 저지가 올 시즌 이전 포스트시즌에서 타율 3할을 넘긴 것은 2018년(타율 0.421 3홈런 4타점)이 유일하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했던 2017년에도 포스트시즌에선 13경기 타율 0.188(4홈런 11타점)에 그쳤고,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2022년 포스트시즌에서도 9경기 타율 0.139(2홈런 3타점)에 그쳤다.

올해도 가을에 약한 면모는 계속 되고 있다.
저지 이전의 양키스 주장이었던 지터가 ‘미스터 노벰버(Mr. November)라고 불리며 가을만 되면 날아다녔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다.
이번 가을에도 디비전시리즈부터 월드시리즈 2차전까지 11경기에서 타율 0.150(40타수 6안타) 2홈런 6타점으로 철저히 눌리고 있다.
이번 가을 OPS가 정규시즌의 장타율에도 못 미치는 0.605에 불과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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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시티와의 디비전 시리즈 4경기에서 타율 0.154 0홈런 0타점에 그쳤던 저지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선 5경기에서 타율 0.167에 그치긴 했지만, 2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어느 정도 타격감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월드시리즈만 가면 분명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양대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인 오타니 쇼헤이와의 맞대결이 메이저리그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부풀렸으나 저지는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26일(이하 한국시간) 1차전에서 5타수 1안타 1득점 삼진 3개로 고개를 숙인 저지는 27일 2차전에서도 4타수 무안타 삼진 3개를 당했다.
월드시리즈 도합 9타수 1안타 1득점. 볼넷은 하나도 없이 삼진만 6개다.
양키스의 주장의 명예가 곤두박질칠만한 성적표다.

아무리 저지가 부진하다고 해도 그를 상대하는 투수들은 그를 만만하게 보고 승부할리 없다.
함부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넣지 않는다는 얘기다.
스트라이크보다는 유인구와 볼로 승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 되는 부진에 성급해진 저지는 어이없는 공에 방망이가 나가다가 타격 밸런스가 무너졌고, 이제는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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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가 부진한 대신 타선에서 저지 앞뒤에 위치하는 ‘데려온 거포’ 후안 소토와 ‘잊혀진 거포’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이번 가을에서 펄펄 날고 있다.
소토는 월드 시리즈 2차전에서도 동점 솔로포를 터뜨리는 등 이번 포스트시즌 11경기에서 타율 0.350(40타수 14안타) 4홈런 9타점 OPS 1.160으로 매서운 타격감을 뽐내고 있다.
소토의 활약은 상수였다면 스탠튼의 이번 가을야구에서의 대활약은 대반전이다.
오랜 부상으로 인해 이제는 평균 혹은 평균 이하의 타자로 전락한 듯 했던 스탠튼은 이번 포스트시즌 11경기에서 타율 0.279(43타수 12안타) 6홈런 14타점 OPS 1.098을 기록 중이다.
스탠튼에게도 이번 월드 시리즈가 생애 첫 월드 시리지이지만, 1차전 역전 투런포를 통해 월드시리즈 첫 홈런포도 가동했다.
소토와 스탠튼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월드 시리즈 진출 자체가 힘들었던 양키스다.

1,2차전을 모두 내주며 3,4,5차전이 열리는 뉴욕행 비행기를 탄 양키스. 이제는 저지의 방망이가 살아나야만 불리한 형국을 뒤집을 수 있다.
저지의 마인드셋부터 바뀌어야 한다.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마음이 아닌, 기본인 출루부터 시작해 뒤에 잘 맞고 있는 스탠튼에게 찬스를 이어준다는 마음으로 타석에 임해야만 지금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다.
야구는 홈런만이 있는 게 아니다.
더더욱 양키스의 주장이라면 홈런이 아닌, 팀의 승리가 먼저 아닌가.
남정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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