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78세 별세...獨 축구계 '깊은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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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가족 품에서 영면...독일 축구계는 물론 세계 축구계 '애도'
'카이저' 베켄바워(왼쪽)가 8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펠레와 함께한 장면. 펠레는 지난 2022년 투병 끝에 별세했다./AP.뉴시스 |
[더팩트 | 박순규 기자] 독일 축구의 거장인 '카이저(황제)' 프란츠 베켄바워가 78세를 일기로 별세하면서 독일 축구계는 물론 세계축구계가 깊은 애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AP통신이 9일 보도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한 축구계의 거장 프란츠 베켄바워는 전날인 1월 8일 오후 5시 12분(현지시간),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빌트’ 등 독일 매체 들이 속보로 전했다. 베켄바워 유족 측은 "베켄바우어 바이에른 뮌헨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베켄바우어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잠들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돼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밝혔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독일 축구계는 물론 세계축구계 모두 갑작스런 별세 소식을 듣고 은 슬픔에 잠겼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선수는 물론 지도자, 행정가로서도 깊은 족적을 남긴 그를 추모하는 축구계 주요 인사들의 글도 이어졌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서독대표팀 주장으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있는 베켄바워. 그는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우승을 기록한 두 번째 축구인이다./AP.뉴시스 |
유럽축구연맹(UEFA)의 알렉산데르 체페린 회장은 "축구계는 전설적인 카이저의 죽음을 애도합니다. 그의 비할 데 없는 다재다능함, 수비와 미드필드 사이의 우아한 전환, 흠 잡을 데 없는 볼 컨트롤, 그리고 선견지명 있는 스타일은 그의 시대에 축구가 행해졌던 방식을 재구성했습니다. 그의 지도적인 자질은 국가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을 가장 성공적인 시기에 맡았고 그의 감독 경력에서 계속해서 빛을 발하면서 빛났습니다. 축구의 역사상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인 베켄바우어의 유산은 논쟁의 여지가 없습니다. 진정한 전설에게 작별을 고합니다!고 추모했다.
또 독일 축구 연맹 회장 베른트 노이엔도르프는 "프란츠 베켄바우어의 죽음은 정말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그의 삶의 업적을 존경과 큰 감사의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그에게서 우리는 독특한 축구 선수와 사랑스러운 사람을 잃고 있습니다. '카이저'는 우리 스포츠가 본 최고의 선수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의 용이성, 그의 우아함, 그리고 그의 비전으로, 그는 경기장에 기준을 세웠습니다. 그의 에너지와 추진력뿐만 아니라,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팀 보스로서 그의 꼼꼼함과 카리스마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고 애도했다.
"독일과 세계 축구의 전설인 프란츠 베켄바워는 역사에 각인된 업적과 승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의 모든 인기에도 불구하고, '더 카이저'는 항상 겸손하고 현실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위대한 사람이고, 축구의 친구이며, 챔피언이며, 진정한 전설인 프란츠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
"카이저는 사라졌습니다: 그는 우아함, 친절함, 우정을 상징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나를 펠레, 크루이프 또는 찰턴과 같은 축구에 데려왔습니다. 그는 독일 축구뿐만 아니라 세계 축구도 만들었습니다. 나에게,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계급의 전형이었습니다. 베켄바우어 아저씨는 사라졌습니다." (프랑스 축구의 거장 미셸 플라티니)
베케바워는 2002년부터 별세 직전까지 김민재가 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명예회장으로 일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기존 리베로의 역할을 개편한 독일실 리베로로 뛰면서 특유의 제왕적 리더십과 경기 장악력으로 '카이저(Der "Kais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세계 최우수 축구선수에게 수상하는 발롱도르를 1972년과 1976년 수상한 유일한 수비수이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브론즈슈 및 신인상을 비롯해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에 2회, 월드 사커 올해의 팀에 11회 연속, 키커 올해의 팀에 12회 연속 선정되었다.
클럽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의 주장을 맡아 분데스리가 4회 우승, 유러피언컵 3연패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바이에른 뮌헨의 첫 번째 전성기를 이끌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아 유로 1972와 1974 서독 월드컵 우승을 주도하며 서독 축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스타 선수는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통설을 보란듯이 깨고 지도자로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서독 대표팀의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을 이끌면서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을 모두 제패했다.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한 두 번째 축구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1호는 선수로서 두 차례 월드컵(1958년·1962년)과 감독으로서 한 차례 월드컵(1970년) 우승을 경험한 브라질의 마리우 자갈루다.
베켄바워는 이후 독일축구연맹 부회장,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장, FIFA 집행위원, 바이에른 회장 및 명예회장을 역임하면서 행정가로서도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서도 모두 성공한 그는 축구계의 '황제'로 기억된다.
한편 베켄바워와 함께 축구계의 황제로 불린 브라질의 펠레는 2년 간의 투병 끝에 지난 2022년 12월 30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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