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의 인생 후반전] "파리서 무조건 메달 나와야…내 경험 후배들에게 나눠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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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마사회 탁구단 감독
초교 3학년 탁구채 잡아
1년 만에 영남 대회 1위
성과 거두니 재미 느껴
고교 1학년 국가대표로
승부욕 강한 연습벌레
머리맡에 라켓 두고 자
그랜드슬램 달성 한국 유일
노력 뒤 성공 온다 믿어
마사회 감독으로 14년
대한탁구협 부회장까지
올림픽선 해설위원 출격
탁구 발전 위해 힘쓸 것
지난 19일 인천 청라에 위치한 한국마사회 탁구단 훈련장. “똑-딱, 똑-딱” 탁구공 소리와 함께 선수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10여 명의 선수들이 쉴새없이 공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 중인 선수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현정화(55)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다.
현재 마사회 탁구단을 이끌고 있는 현 감독은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맹훈련 중이었다.
사실 현 감독에게 붙는 수식어는 참 많다.
그는 ‘탁구 여제’, ‘탁구 레전드’, ‘원조 국민 여동생’ 등으로 통한다.
대한민국 탁구계에서 이 분야의 권위자를 꼽으라 하면 누구나 ‘현정화’라는 이름 석 자가 튀어 나올 정도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배 양영자와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의 리분희 등과 함께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 여자 단체전 우승을 거뒀다.
현 감독을 만나 그의 ‘탁구 인생’ 이야기부터 최근 근황까지 들어봤다.
우선 처음 탁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현 감독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다.
그 당시 학교에서 각 반에 달리기 잘하는 아이들을 뽑았다.
남녀가 합쳐서 40~50명 정도 뽑힌 것 같다.
그런데 한 6개월이 지나자 반 이상이 떨어졌고, 나중에 6학년이 됐을 때는 6명만 남았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꾸준한 노력과 성실은 빛을 발했고,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현 감독은 “탁구를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를 느꼈다.
1년 만에 영남에서 하는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대회에서 이길수록 탁구에 매력을 느꼈고, 어느새 유망주가 되었다”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국적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5년에는 국가대표가 됐다”고 미소 지었다.
◆韓 탁구 역사상 ‘그랜드슬램’ 달성
현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그는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잠도 못 자고,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라켓을 항상 머리 맡에 두고 잘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였다”면서 “그래서 다른 선수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서브가 좋은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저 나름대로 분석도 많이 했었다”고 떠올렸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우리 선수가 경기에서 지면 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역시절 못지 않은 승부욕을 보여줬다.
현 감독은 특히 대한민국 탁구선수 중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주요 국제대회에서 얻은 금메달만 따져도 무려 23개나 된다.
한국 탁구 역사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로도 유일하다.
탁구에서 그랜드슬램은 선수로 활동하는 기간에 세계선수권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 단식·복식·혼합복식 등 4개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 같은 대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현 감독은 “가장 인상이 남은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개최했던 1986 서울 아시안게임(단체전 우승)과 1988 서울 올림픽(여자복식 금메달)에서 금메달을 딴 순간이었다.
국민들이 응원해 주셔서 저 역시 더 기뻤던 것 같다”며 “또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우승한 것도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결승까지만 가자’는 느낌으로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흐뭇해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많이 땄지만, 단식에서 1등을 한 것은 한국 최초이기도 하다.
사실 탁구를 친다고 하면 개인 단식 1등은 한 번 해봐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탁구 여왕의 신화를 쓰고 1994년 은퇴했다.
◆“탁구 발전 위해 힘 쏟고 싶다”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현 감독 만의 삶의 철학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노력 뒤에는 성공이 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저는 은퇴할 때까지 1등을 하고 그만뒀다.
노력은 항상 결과로 이어졌다.
지기 싫고, 밀려서 은퇴하기는 싫었다.
물론 제 성적이 좋았고, 잘했기 때문에 은퇴를 빨리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체력관리에도 철저했다.
현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체력 관리를 잘했다.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철저하게 지켰던 것 같다.
그래서 탄산음료나 커피 조차도 절대 마시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마시게 되면 경기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 감독은 지금도 마사회 탁구단 감독으로,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마사회 탁구단은 1996년에 창단됐다.
창단하면서 제가 코치로 있다가 2010년 감독으로 선임됐다.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국가대표도 만들고 훌륭한 선수로 키우고 있다”고 현 감독은 소개했다.
올해는 탁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최된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개최된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부산에서 열리기도 했고, 제 고향이 부산이라 대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왔었다.
저 역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맡게 됐다”면서 “그 공을 인정 받아서 협회 부회장을 맡게 된 것 같다.
제가 앞으로 탁구를 몇 년 더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탁구 발전을 위해서 힘 쏟고 싶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현 감독은 “저는 해설위원으로 파리에 가게 됐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무조건 메달이 나와야 된다.
몇 년째 메달이 없다.
남자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지금까지 메달이 없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이라도 꼭 따야 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현 감독은 “저의 경험을 많은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강조한 뒤 “많은 분들이 현정화 하면 탁구를 잘 했던 선수, 지도자로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저는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런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 할 것이다.
또 탁구 인생 40년간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다방면으로 선행에 동참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천=김민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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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교 3학년 탁구채 잡아
1년 만에 영남 대회 1위
성과 거두니 재미 느껴
고교 1학년 국가대표로
승부욕 강한 연습벌레
머리맡에 라켓 두고 자
그랜드슬램 달성 한국 유일
노력 뒤 성공 온다 믿어
마사회 감독으로 14년
대한탁구협 부회장까지
올림픽선 해설위원 출격
탁구 발전 위해 힘쓸 것
지난 19일 인천 청라에 위치한 한국마사회 탁구단 훈련장. “똑-딱, 똑-딱” 탁구공 소리와 함께 선수들의 힘찬 기합소리가 훈련장을 가득 채웠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10여 명의 선수들이 쉴새없이 공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 중인 선수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현정화(55)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다.
현재 마사회 탁구단을 이끌고 있는 현 감독은 선수들과 구슬땀을 흘리며 맹훈련 중이었다.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
그는 ‘탁구 여제’, ‘탁구 레전드’, ‘원조 국민 여동생’ 등으로 통한다.
대한민국 탁구계에서 이 분야의 권위자를 꼽으라 하면 누구나 ‘현정화’라는 이름 석 자가 튀어 나올 정도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선배 양영자와 함께 금메달을 차지했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북한의 리분희 등과 함께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 여자 단체전 우승을 거뒀다.
현 감독을 만나 그의 ‘탁구 인생’ 이야기부터 최근 근황까지 들어봤다.
우선 처음 탁구를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현 감독은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탁구를 시작했다.
그 당시 학교에서 각 반에 달리기 잘하는 아이들을 뽑았다.
남녀가 합쳐서 40~50명 정도 뽑힌 것 같다.
그런데 한 6개월이 지나자 반 이상이 떨어졌고, 나중에 6학년이 됐을 때는 6명만 남았다”고 그 당시를 회상했다.
그의 꾸준한 노력과 성실은 빛을 발했고,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현 감독은 “탁구를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를 느꼈다.
1년 만에 영남에서 하는 대회에서 1등을 했다.
대회에서 이길수록 탁구에 매력을 느꼈고, 어느새 유망주가 되었다”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전국적으로 두각을 나타냈고,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5년에는 국가대표가 됐다”고 미소 지었다.
1988 서울 올림픽 탁구 대표팀으로 출전한 현정화가 경기에 임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
현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승부욕이 강했다.
그는 “경기에서 지면 분해서 잠도 못 자고, 그때 상황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라켓을 항상 머리 맡에 두고 잘 정도로 지독한 연습벌레였다”면서 “그래서 다른 선수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서브가 좋은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저 나름대로 분석도 많이 했었다”고 떠올렸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도 “우리 선수가 경기에서 지면 내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현역시절 못지 않은 승부욕을 보여줬다.
현 감독은 특히 대한민국 탁구선수 중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주요 국제대회에서 얻은 금메달만 따져도 무려 23개나 된다.
한국 탁구 역사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로도 유일하다.
탁구에서 그랜드슬램은 선수로 활동하는 기간에 세계선수권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 단식·복식·혼합복식 등 4개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것을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 같은 대기록을 보유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한 현정화(왼쪽)가 북한의 리분화와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
국민들이 응원해 주셔서 저 역시 더 기뻤던 것 같다”며 “또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해 우승한 것도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결승까지만 가자’는 느낌으로 준비했는데, 결과가 좋았다”고 흐뭇해 했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금메달을 많이 땄지만, 단식에서 1등을 한 것은 한국 최초이기도 하다.
사실 탁구를 친다고 하면 개인 단식 1등은 한 번 해봐야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탁구 여왕의 신화를 쓰고 1994년 은퇴했다.
현정화 감독이 탁구 동호인 대상 원포인트 레슨에 나서 수강생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다. 한국마사회 제공 |
잠깐 이야기를 돌려서 현 감독 만의 삶의 철학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는 “무엇이든 노력하면 ‘노력 뒤에는 성공이 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저는 은퇴할 때까지 1등을 하고 그만뒀다.
노력은 항상 결과로 이어졌다.
지기 싫고, 밀려서 은퇴하기는 싫었다.
물론 제 성적이 좋았고, 잘했기 때문에 은퇴를 빨리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체력관리에도 철저했다.
현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체력 관리를 잘했다.
무엇보다 체력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했고, 철저하게 지켰던 것 같다.
그래서 탄산음료나 커피 조차도 절대 마시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마시게 되면 경기력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 감독은 지금도 마사회 탁구단 감독으로,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마사회 탁구단은 1996년에 창단됐다.
창단하면서 제가 코치로 있다가 2010년 감독으로 선임됐다.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국가대표도 만들고 훌륭한 선수로 키우고 있다”고 현 감독은 소개했다.
올해는 탁구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그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최된 ‘2024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월 개최된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부산에서 열리기도 했고, 제 고향이 부산이라 대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왔었다.
저 역시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맡게 됐다”면서 “그 공을 인정 받아서 협회 부회장을 맡게 된 것 같다.
제가 앞으로 탁구를 몇 년 더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탁구 발전을 위해서 힘 쏟고 싶다.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 파리올림픽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현 감독은 “저는 해설위원으로 파리에 가게 됐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무조건 메달이 나와야 된다.
몇 년째 메달이 없다.
남자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이후 지금까지 메달이 없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는 동메달이라도 꼭 따야 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현 감독은 “저의 경험을 많은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강조한 뒤 “많은 분들이 현정화 하면 탁구를 잘 했던 선수, 지도자로도 잘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저는 그런 부분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그런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 할 것이다.
또 탁구 인생 40년간 국민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고자 다방면으로 선행에 동참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천=김민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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