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회장님, 답변지 툭 던지고 마주한 ‘그 기백’ 어디로 갔습니까 [SS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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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2020년 6월. 스포츠서울과 만난 대한축구협회(KFA) 정몽규 회장은 자기 앞에 놓인 수십 장의 답변지를 훑어봤다.
미리 보낸 질문에 홍보팀장이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놓은 자료다.
그런데 정 회장은 서너 장을 넘기다가 자기 앞에 툭 던졌다.
“그냥 편하게 얘기하시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 회장은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한 KFA 행정, 천안시에 건립하는 축구종합센터, 새 엠블럼과 디비전시스템 등 여러 주제에 대해 가감 없이 견해를 내놨다.
인터뷰 당시 3선 도전을 앞뒀을 때인데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축적된 내공을 바탕으로 소신이 느껴지는 답변을 내놨다.
이전에 만난 정 회장과 느낌이 달랐다.
형식적인 답변으로 대면 인터뷰를 마치고 홍보 관계자가 작성한 ‘정석 답변지’를 기자에게 전달하는 다수 종목 단체장과 다른 기백이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몽규 3선 체제’는 당시 느낀 기백과 미래지향적 기대감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정 회장은 KFA 뼈대와 맞지 않는 에자일 조직을 도입했다가 스페셜리스트 이탈을 자초했다.
또 미디어와 대중의 비판엔 귀를 닫았다.
다양한 보도 채널이 존재하는 시대에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단정 짓고 ‘무대응 원칙’으로 4년 가까이 지냈다.
자연스럽게 민심을 잃었다.
정 회장의 심경이 갑자기 바뀐 것인지, 그를 챙기는 ‘참모’ 고위 관계자의 헛발질인지는 정확히 ‘그들’만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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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소통 부재에서 비롯한 여러 문제는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지난해 정 회장 주도로 은밀하게 추진한 ‘승부조작범 포함’ 징계 축구인 100명 특별 사면 조치가 대표적이다.
스포츠 최대 가치인 공정성 훼손 논란과 더불어 역사상 ‘최대 헛발질’로 질타받은 이 사건은 정 회장 체제의 최대 흑역사로 기록됐다.
정 회장은 상처받은 축구인, 팬과 교감도 나누지 않고 자체 사면권을 가동했다가 화를 불렀다.
여기에 클린스만 감독 리스크가 더해졌다.
모두 정 회장 체제에서 ‘톱다운’으로 시행된 결과물이다.

한국 축구는 2024년 악화일로다.
한때 KFA만의 문제였으나, 어느덧 한국 축구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A대표팀 사령탑 홍명보 감독이 선임되기까지 절차적 정당성 화두로 떠들썩했던 전력강화위원회 문제는 어디까지나 KFA의 허술한 시스템과 궤를 같이한다.

여기에 더해 KFA는 전력강화위원으로 최근 내부 문제를 고발한 박주호에게 법적 대응이라는 무리수를 뒀다.
KFA가 둔무리수와 달리 박주호의 발언은 축구계 고인 물에 대한 소신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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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건 일련의 과정을 두고 이영표 박지성 등 축구계 레전드가 비난여론에 동참한 사실이다.
이들 중엔 사면사태 때 KFA 고위직을 지낸 이도 있고, 한국 축구를 위한 직책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한 이도 있다.
정작 자신들을 필요로 하고 한국 축구에 봉사할 상황일 땐 뒤로 물러난 이들이 KFA 행정을 비난하는 데 동참했다.
한 축구인은 “영향력 있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인기영합주의적 발언, 행태를 보이는 건 축구계를 두 동강나게 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두 동강나는 한국 축구를 수습하고 책임져야 할 건 수장이다.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용서든 해명이든, 4년 전 선보인 정 회장의 기백과 소신 있는 발언을 기대한다.
그가 다시 축구계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게 4선 출마 회견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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