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이 3개잖아, 그럼 견제야!” 김성근 감독도 적극활용한 ‘준비동작’의 중요성[노경열의 알쓸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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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푸른 하늘. 빨갛고 노란 단풍들. 여기저기서 들리는 환절기 감기 소식까지. 가을이다.
가을이 오면 프로야구 팬들은 더욱 신난다.
가을축제, 포스트시즌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KT와 NC의 플레이오프(PO)가 한창이다.
LG는 한국시리즈(KS)에서 기다리고 있다.

과연 올시즌 우승은 LG일까, 아니면 어디일까?

야구 담당 기자를 했던 필자 역시 가을야구에 대한 재밌는 추억이 많다.
오늘은 그중에서 김성근 감독에 대한 에피소드를 하나 공개하고자 한다.
마침 이 에피소드는 지난 칼럼에서 다뤘던 ‘상대의 준비동작 파악하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는 2007년 가을, SK가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며 먼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 있었고 준PO가 막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SK를 우승후보로 꼽는 전문가는 없었다.
김성근 감독이 사령탑으로 앉은 첫 해이기도 했고, 스타 선수도 별로 없었으며, 믿었던 신인 에이스 김광현은 정규시즌동안 기대만큼의 실력을 보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규리그는 어떻게 우승을 했지만, 단기전인 한국시리즈에서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 예상을 증명하듯 준PO가 치러지는 동안 SK의 훈련장을 찾은 기자는 필자밖에 없었다.
첫날에는 이런저런 내용을 취재했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사흘째쯤 되니 취재할 내용도, 스몰톡을 할 소재도 다 떨어져 버렸다.
우두커니 더그아웃에 서서 선수들의 도루 훈련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곁에 온 김성근 감독께서 말을 걸었다.

“노 기자, 지금 저 투수가 견제를 할까, 홈으로 던질까?”

그라운드에서는 마운드의 투수가 세트 포지션을 취하고, 투구 순간 1루 주자가 2루를 훔치는 훈련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떤 때는 투수가 홈으로 던지는 사이 주자가 무사히 2루에 안착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투수의 견제에 걸려 주자가 아웃되고 있었다.
투수에게 뭔가 특별한 버릇이 있어서 견제를 미리 파악할 수 있나 싶었던 필자는 한참을 주의 깊게 지켜봤지만, 어디로 던질지 정확하게 예상하는 것은 어려웠다.

“감독님 모르겠습니다!”

“잘 봐, 이번엔… 홈으로. 이번엔… 견제네~”

세상에. 투수가 투구동작을 시작하기도 전에 김성근 감독은 홈으로 던질지 견제할지를를 정확하게 맞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감독님. 어떻게 아셨어요? 감독님이 사인을 내고 계신 건가요?”

“허허, 무술한다는 사람이 그걸 못 찾아. 봐봐. 세트 포지션에서 투수 왼쪽 바지 주름이 2개지? 그럼 홈이야. 바지 주름이 3개지? 그럼 견제야. 1루로 조금이라도 빨리 몸을 돌리려고 미세하게 몸이 더 틀어져 있는거지.”

바지 주름을 보고 그걸 알아낸다고? 투수 팔근육을 보고 공을 잡은 그립을 알아내서 타자가 구종을 미리 파악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실제로 그래서 투수들은 긴 소매옷을 입곤 한다), 바지 주름은 너무 억지 아닌가?

그런데 그 주름만 보고 있으니 필자 역시 어느 정도는 견제구를 던지는 타이밍을 맞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필자는 그 해 SK가 통합우승을 일궈낼 것이라는 걸 믿는 유일한 기자가 되었다.

김성근 감독이 강조한 부분이 바로 무술에서 그리고 호신술에서 중요하다고 언급한 ‘준비동작’이다.
수많은 준비동작 중에서 어느 단계까지 깊이 파악할 수 있는가에 따라 상대의 악한 의지와 행동을 더 빨리 차단할 수 있다.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 타이밍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준비동작을 철저하게 지우려고 노력하듯, 나를 위협하려는 이들도 자신의 악한 의지와 행동을 미리 노출하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투수의 바지 주름까지 세는 수준으로, 위협 상황에서의 준비동작에 대해 미리 공부하고 파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SK는 그 해 두산을 꺾고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SK 왕조의 시작이었다.
정규시즌 부진했던 김광현의 환상투 등 야구팬들이 기억할 에피소드들이 많겠지만, 필자는 SK 특유의 ‘달리는 야구’를 완벽하게 만들어 준 그 ‘바지 주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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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 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정무절권도 총본관’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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