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노는 꿈을 꾸며 시작하는 글 [야! 가치 놀자!(feat. 김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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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에이스이자 한국 여자야구선수 최초로 일본 실업팀에 진출한 김라경 선수가 2024시즌부터 스포츠서울 필진으로 칼럼 ‘야!(野) 가치(價値) 놀자’를 연재합니다.
동그란 안경을 쓰고 야구를 하던 소녀 시절을 벗어나 이제는 어엿한 야구선수가 된 인간 김라경의 모습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우리 다 ‘가치’ 놀아봐요!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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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바람과 함께 불어온 미세먼지로 칼칼해진 목을 한번 콜록거리며, 드디어 야구의 계절이 돌아왔음을 체감한다.

2024년은 한국 야구에 길이 회자될 해일 것이다.
지난 20일부터 이틀간 메이저리그(ML)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팀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개막전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ML 서울시리즈’를 향한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우리의 하성킴(김하성·샌디에이고)과 오타니 쇼헤이(다저스)를 비롯해 세계적인 슈퍼스타들의 방한에 ‘서울시리즈’를 직관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았다.
동료 선수들을 비롯해 학교 친구들까지. 수십명에게 티켓팅을 미리 부탁해 놓는 열정을 보이는 친구도 보였다.
심지어 스포츠와 거리가 멀어 보였던 친구들까지 ‘서울시리즈’를 가겠다는 열의를 보이는 걸 보며 왜 야구가 ‘국민 스포츠’라 불리는지를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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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리즈’를 치르면서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한국식 응원 문화를 ‘흥미롭다’고 표현했다.
시종일관 열정적인 응원에 ‘열렬한 에너지’를 느꼈다고 극찬했다.
확실히 KBO리그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우리만의 흥과 정겨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노니는 스포츠관람 놀이 문화가 돋보인다.

특히 KBO리그는 코로나19펜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여성 관람객 비율이 약 46%다.
약 70%가 남성 관람객인 ML에 비해 분포가 고르게 나타난다.
KBO 굿즈 구매율 대부분은 여성이 차지할 만큼 여성들의 야구사랑은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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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 범위와 자리는 한정적인 것 같다.
관중석, 시구자로서만 밟을 수 있는 마운드. ‘직업’ 야구선수가 될 수 있는 성별이 정해져 있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과연 ‘국민 스포츠’의 요건은 무엇일까. 관람 스포츠로서 접근성이 좋고 인기가 높으면 국민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국민 스포츠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기회’와 ‘인프라’가 갖추어진 것이다.
향유한다는 것은 온전히 즐기고 누린다는 뜻으로, 자의지가 있으면 ‘씹고 뜯고 맛볼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야구는 ‘국민 스포츠’라는 타이틀에 충족할 수 없다.
혹자는 야구를 국민 스포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12년간 야구를 해온 나는 야구 인프라를 ‘치아’의 유무로 빗대어 표현하고 싶다.
치아가 없는 사람도 씹고 뜯고 맛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행위를 지속할 수 없을 것이며,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어딘지 모르게 속이 쓰리고 슬퍼진다.
23년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야구와 함께했다.
야구를 통해 사람을 알아가고 인생의 달콤함과 쓴맛을 경험했으며 당당해지는 나를 마주했다.
어느새 야구는 내 인생을, 곧 나를 표현하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런 야구가 국민에게 사랑받고 향유되는 존재였으면 좋겠다.
모두의 삶 속에 친숙히 스며들어 행복과 위안을 주는 존재가 됐으면 한다.

존경하는 김창옥 선생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곁에 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말로 누군가를 가르치려하기 보다는 본인이 먼저 본보기가 되려고 하는 ‘삶으로 말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

접근은 다르지만, 야구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말보단 삶 그 자체로 얘기하고 싶다.
일상에서 내가 야구를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독자들과 나누며 야구장에서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미래를 꿈꿔본다.
“야!(野) 가치(價値)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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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ML은 지난 21일 ‘서울시리즈’ 개막 2차전에 앞서 레전드 캔 그리피 주니어와 함께 한국 남녀 리틀야구 선수를 시구자로 내세웠다.
한국 리틀야구 선수 대표로 백지수 양이 공을 던졌다.
언젠간 여성도 시구자가 아닌 선수로 당당히 고척 마운드에 오르는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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