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질 받던 조규성·조현우…‘탈락 위기’ 한국 축구 구했다

프로 세계에서 축구 선수는 때로는 비판을 넘어 과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게 프로의 숙명이라고 합리화한 여론은 돌을 던진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나락으로 빠지는 선수가 있다.
하지만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을 일구는 이도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침묵한 ‘스트라이커’ 조규성(미트윌란)과 말레시아와의 3차전에서 3골을 실점한 조현우(울산)도 일주일 사이 수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냥 주눅 들지만은 않았다.
골대를 향해 달리고, 공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렸다.

대한민국 조규성이 30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후 포효하고 있다. 뉴스1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 축구가 조규성의 극적인 동점골과 조현우의 눈부신 페널티킥 선방 덕분에 탈락 위기에서 구사일생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31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 아시안컵 사우디아라비아와의 16강전에서 1-1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4-2로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조규성은 경기 종료 직전 패배에 몰린 팀을 구하는 헤더 동점골을 터트렸고, 골키퍼 조현우는 승부차기에서 선방쇼를 펼쳐 승리를 가져왔다.

이로써 한국은 1996년 대회부터 8회 연속으로 아시안컵 8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이제 클린스만호는 다음 달 3일 오전 12시30분(한국시간) 호주와 4강행을 다툰다.
호주는 지난 28일 인도네시아를 4-0으로 꺾고 8강에 선착했다.

이날 클린스만 감독은 그간 ‘무(無)전술’ 논란을 의식한 듯 부임 이후 처음으로 스리백 선발 라인업을 들고나왔다.
조별리그에서 1승2무로 웃지 못할 성적표를 작성한 대표팀 명단에 변화를 줬다.

왼쪽부터 김영권(울산),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정승현(울산)으로 이어지는 3명의 중앙 수비수가 최후방 라인을 구성했고, 설영우(울산)가 왼쪽, 김태환(전북)이 오른쪽 측면 윙백을 맡았다.
중원은 황인범(즈베즈다), 이재성(마인츠)이 맡았고, 손흥민(토트넘)을 필두로 왼쪽 정우영(슈투트가르트), 오른쪽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이 스리톱을 구성했다.
골키퍼 장갑은 이날의 ‘영웅’ 조현우가 꼈다.
조별리그 내내 선발로 나와 공격을 책임졌던 조규성은 벤치에서 시작했다.

양 팀은 전반에 전력을 탐색하듯 중원 싸움을 펼쳤으나, 뚜렷한 공격 찬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한국 중원을 책임진 황인범과 이재성은 사우디의 3명의 미드필더에게 수적 싸움에서 밀려 고전하는 모습을 노출했다.
전반은 0-0 소강상태로 끝났다.

30일(현지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023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사우디아라비아 대 대한민국의 경기, 후반 조규성이 동점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후반부터 폭풍이 몰아쳤다.
불안하게 전반을 마친 한국은 후반 1분 만에 실점을 허용했다.
알다우사리의 침투 패스를 받은 압둘라 라디프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수세에 몰린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9분 정우영을 불러들이고 황희찬(울버햄프턴)을, 후반 19분 정승현, 정우영을 빼고 박용우(알아인), 조규성을 투입했다.
포백으로 전환하면서 사실상 이날 스리백 전술은 실패로 돌아갔다.


후반 막판 한국은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우디 진영에서 거세게 몰아쳤다.
10분의 추가 시간이 부여된 가운데, 후반 48분 이강인의 크로스에 이은 조규성의 헤더가 크로스바에 맞아 아쉬움을 삼켰다.

이대로 탈락의 수모를 겪어야 하는 순간, 반전 드라마가 쓰이기 시작했다.
한국은 결국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54분 조규성의 극적인 헤더로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오른쪽 측면에서 김태환이 긴 크로스를 올렸고, 왼쪽에서 설영우가 넘겨준 헤더 패스를 조규성이 문전에서 머리로 받아 사우디의 골망을 흔들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최악의 골 결정력으로 무득점에 그치던 조규성의 대회 첫 골. 긴 침묵을 깨며 팀을 구해낸 조규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에서야 기쁨의 포효를 했다.

연장전에서도 한국은 사우디의 골문을 계속 위협했지만 번번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과 수비수들의 육탄방어에 가로막혔다.

대한민국 골키퍼 조현우가 30일(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 승부차기에서 사우디 세 번째와 네 번째 키커 알 나지와 카리브의 슛을 막아낸 뒤 포효하고 있다. 뉴스1

결국 승부차기에 들어선 이날 승부는 조현우가 ‘빛현우’라는 별명답게 눈부신 선방을 선보였다.
한국 키커들이 모두 득점에 성공하는 가운데, 조현우는 사우디의 3번째 키커 사미 알나즈이와 4번째 키커 압두르라흐만 가리브의 왼쪽 골대로 향하는 슈팅을 잇달아 막아내 한국에 8강행 티켓을 안겼다.
조규성은 페널티킥에서도 세 번째 키커로 나서 침착하게 골망을 갈랐다.
네 번째 키커인 황희찬이 성공시키며 승부는 한국의 승리로 결정지어졌다.

조현우는 경기 뒤 “믿음이 있었기에 좋은 결과로 이긴 거 같다”면서 “승부차기를 막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조규성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들어가서 무조건 골 넣는다는 마음으로 플레이했다”며“ “사실 찬스가 더 많았는데 못 넣어서 더 아쉬웠다.
한 번 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득점할 수 있었고, 골이 들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며 “정말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다”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장한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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