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인터뷰]여권 도난에도···10대 사수의 ‘금빛 총성’ 사격 오예진 “19년 뒤에도 총 쏘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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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처음 방아쇠를 당긴 순간을 기억한다.
오예진은 14살에 처음 권총을 들었다.
마음을 뺏기기까지 딱 한 발이면 충분했다.
“운동이라면 뭐든 좋아!”라며 호기롭게 사격을 시작했으나, 다소 정적인 움직임에 긴 적응 기간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탕!’하며 공간을 채우는 파열음에 뺏긴 마음은 유턴이 없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신을 위로하며 정진했다.
결국 19세에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격이 ‘퍼스널 컬러’ 그 자체인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오예진(IBK)을 창간 19주년을 맞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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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친구 따라 금메달까지
시작은 배구였다.
한때 배구 선수를 꿈꿀 정도로 진심인, 모든 운동을 좋아한 활발한 소녀였다.
중학교 때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 사격장을 방문했다.
오예진은 “첫 발을 쏘자마자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라.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사격에도 여러 종목이 있지만, 오예진과 함께하는 ‘권총’은 운명이었다.
그는 “사실 선택권이 없기도 했지만, 권총 하길 잘했다고 항상 생각한다.
소총은 사격복을 입어야 한다.
불편할 것 같다”고 웃은 후 “권총은 총도 짧고 사격하는 방법도 심플하다.
경기하는 모습도 멋있지 않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을 쏘는 모습이 쿨하고 시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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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처음부터 ‘특급 유망주’로 꼽혔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성적이 따라오지 않았다.
오예진은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잘할 것 같다고 해주시고, 나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4년 동안 성적이 좋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흔들릴 때마다 잡아준 은인들이 있었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오예진은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며 “임주영 코치님이 기본기를 가르쳐주신 덕분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내 걸 만들어갈 수 있었다.
조수빈 코치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어려울 때마다 날 일으켜주셨다”고 말했다.
훈련의 결과가 처음 빛을 본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스승’이 있었기에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성적이 잘 나왔던 이유도 홍영옥 코치님이 옆에서 받쳐주셨기 때문”이라고 감사함을 전했다.

주변의 긍정적인 말들을 자신의 생각으로 주입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스스로 ‘긍정 에너지’를 심어 넣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행동도 부정적이게 되더라. 실수를 해서 성적이 안 나왔을 테니 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긍정적인 말들을 내게 해줬다.
그러면서 차분해진 것 같다.
정말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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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프랑스에서 느낀 ‘전화위복’
2024 파리 올림픽이 올림픽 첫 출전이었다.
대회 직전 세계사격연맹(ISSF) 랭킹은 35위에 불과했다.
메달권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유다.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더불어 경기를 앞두고 프랑스에서 훈련을 이어가던 중 지갑과 여권을 도둑맞았다.
이를 알아차린 경기 당일 아침, 눈물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 했던가. 모든 신경, 불안함까지도 도난 사건에 쏠렸다.
한바탕 대소동이 일어난 후 오히려 차분함을 되찾았다.

오예진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어차피 경기는 해야 했다.
한번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총을 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은 사라졌다”며 미소를 지은 뒤 “액땜이라고 생각하고 쐈는데, 결과가 좋았다.
또 연맹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긴급여권도 하루 만에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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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결선 시작도 좋았다.
공기권총 10m 결선은 10발을 먼저 쏜 뒤, 2발씩 쏴서 최저점 사수가 한 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으로 진행된다.
오예진은 첫 발을 쏘려고 팔을 들었지만, 영점이 맞지 않았던 탓에 잠시 팔을 내렸다.
한 차례 숨을 고르고 다시 조준한 첫 발, 10.9점 만점 중 10.7점을 적중했다.
오예진이 뽑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역대급 집안싸움이었다.
마지막 발에서 10.6점을 적중한 오예진은 총 243.2점으로 올림픽 결선 신기록을 수립했다.
룸메이트 김예지(임실군청)와 치열하게 다툰 끝에 오예진이 금메달, 김예지가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사격 역사상 12년 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이전까지 금메달과 은메달이 동시에 나온 건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50m 권총이 마지막이다.
당시 진종오와 최영래가 나란히 금·은메달을 거머쥐었다.

금의환향이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본가가 있는 제주도에 발을 들였을 땐 공항에서 30분간 팬들과 포토타임을 가져야 할 정도였다.
그는 “금메달을 따고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내가 뭔가를 하긴 했구나’ 싶었다”며 “제주도에 갔을 때 공항 짐 찾는 곳부터 사진 요청이 계속됐다.
기쁘고 뿌듯하고 설레는 경험이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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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19년 뒤에 또 만나요”
'어차피 매번 역대급일 거니까. 가고 싶은 대로 가.’ 오예진이 최근 자주 듣는 밴드 그룹 ‘데이식스’의 ‘역대급’이라는 음원 가사 중 일부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데이식스 노래를 들으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있다.
올림픽 메달을 따면서 사격을 알리는 등 영향력을 펼치고 있으나, 더 적극적으로 세상에 긍정적인 힘을 전파하고 싶다는 의지다.

오예진이 사격을 처음 시작한 제주에는 아직 공기권총 25m를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25m와 10m는 기본적으로 총이 다르고, 무게도 다르다.
거리도 더 멀다.
공기권총 10m와 완전히 다른 조건이기 때문에 실전 훈련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에선 이미지 트레이닝, 모의 사격만으로 훈련할 수밖에 없다.
도내 사격 인프라 확충이 절실하다.
오예진 역시 이에 공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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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오예진은 “지금 제주에서 사격을 하고 있는 후배들은 공기권총 25m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다.
10m도 학교에 작은 지하 사격장에서 하고 있다.
많이 어려운 상황이다.
25m 훈련을 해야 대회에 출전하거나 대학에 진학해서 경쟁자들을 쫓아갈 수 있는데, 지금은 여건이 안 되니 후배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겨우 비등비등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25m를 쏠 수 있는 사격장이 필요하다.
제주에 좋은 사격장이 생긴다면 꿈나무 육성에도 좋고, 일반인들도 사격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지역 발전에도 좋지 않겠나. 꼭 생겼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제 시작이다.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건 19살, 사격 선수로서는 어린 나이다.
고등학생티를 막 벗었으나, 앞으로 한국 사격을 책임질 선수로 거듭났다.
창창한 미래를 예고한다.
지금으로부터 딱 2배, 오예진의 19년 뒤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는 “38살. 그때도 총을 쏘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웃은 뒤 “곽정혜 코치님, 오민경 언니는 지금도 사격을 정말 잘한다.
그러니 나도 잘 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사격이 계속 좋을 것 같다.
19년 뒤에도 총을 쏘고 있겠다”며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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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38살이 되기 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바로 ‘그랜드슬램’. 올림픽, 아시안게임, ISSF 세계 선수권대회, 아시아 사격 선수권 대회를 모두 우승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이다.
오예진은 “멀리 내다보면 ‘오예진 하면 사격, 사격 하면 오예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면 좋겠다.
또 오예진이라는 선수는 오랫동안 열심히 노력하고, 꾸준히 잘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정말 많은 응원과 사랑을 받았다.
나로 인해서 사격을 시작하겠다는 어린 친구도 있었다.
앞으로도 발전된 모습 보여 드리겠다.
나와 나이를 같이 먹어가는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도 함께 나아갈 테니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19년 뒤에도 총 쏘고 있을 거다.
그때 또 만났으면 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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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 오예진. 사진=김두홍 기자
청주=최서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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