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게 없다’ 준비된 슈퍼 루키 김택연이 그리는 올해 마지막 장면 [창간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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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잠실=윤세호 기자] “그냥 오른손 타자와 상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차가웠다.
지난 5월22일 잠실구장에서 최정과 마주한 순간이 그랬다.
최다 홈런 타자를 상대로 두산 신인 김택연(19)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1-1 동점을 허용한 7회초 1사 3루. 역전 위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뜨겁게 타오르던 상대 팀 기세에 맞불을 놓았다.
6구 승부 끝에 시속 152㎞ 하이 패스트볼로 최정을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처음 보는 장면은 아니었다.
김택연은 이날 경기 전에도 꾸준히 팀을 구원했다.
상대 주자가 득점권에 자리한 위기에서 특히 빛난다.
승계주자 실점율 ‘제로’. 올해 처음 프로 마운드에 선 만 19세 투수가 총 17명의 주자를 묶었다.
구위와 멘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두산의 든든한 승리 공식이 됐다.
김택연이 등판할 때 잠실구장 관중석에서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날은 조금 달랐다.
당연한 결과로 보일 수 있지만 상대한 타자가 특별한 존재였다.
최근 프로에 입단한 인천 출신 선수 대다수가 그렇듯 김택연에게도 최정은 야구공을 잡게 만든 영웅이다.
지난해 9월 전체 2순위로 두산에 지명됐을 때도 가장 만나고 싶은 타자로 최정을 언급했다.
당시 김택연은 “어릴 적 야구장에 갔을 때 최정 선배님을 많이 봤다.
처음 야구 할 때도 최정 선배님을 따라 야수를 했다.
최정 선배님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응원도 했다”며 “나도 이제 프로 선수가 됐다.
언젠가는 최정 선배님과 대결할 텐데 멋지게 정면 승부해보겠다”고 당찬 모습을 보였다.
다짐은 약 8개월 후 현실이 됐다.
외야 플라이만 맞아도 역전당하는 상황에서 김택연은 속구를 앞세워 더할 나위 없는 결과를 냈다.
김택연은 “최정 선배님 이름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맞붙고 싶었던 타자지만 의식하면 절대 막을 수 없다고 봤다.
그냥 오른손 타자와 상대한다고 생각했다”며 “물론 경기 후에는 그 장면을 계속 돌려봤다.
영상으로 다시 보니 정말 신기하더라”고 미소 지었다.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
SSG전 다음 경기인 5월24일 광주 KIA전에서는 0.2이닝 4실점했다.
프로 입단 후 최다 실점이었다.
그리고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5월29일 잠실 KT전부터 지난 20일 잠실 NC전까지 11연속경기 무실점. 7일과 8일에는 다시 KIA를 만나 이전 고전을 설욕했다.
13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는 이승엽 감독으로부터 마무리 투수로 보직 변경을 명 받았다.
그냥 나올 수 없는 결과다.
좋은 습관이 있기에 결과도 잘 나온다.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하기에 기복이 적다.
김택연은 중학교 3학년부터 투구 영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쌓아놓은 영상만 600개가 넘는다.
고교 시절부터 자신이 어떤 투수인지. 컨디션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차이를 인지하고 있다.
프로에 입단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구단 전력분석팀이 실전은 물론 훈련 과정도 상세히 기록해준다.
최첨단 장비를 통해 세밀한 부분이 객관적인 숫자로 드러난다.
김택연은 “정말 좋다.
트래킹 데이터가 있으니까 영상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던진 공의 궤적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던질 때 손목의 각도와 회전축이 어떤지 하나하나 다 알 수 있다”며 “매일 회전수와 수직 무브먼트를 체크한다.
영상으로는 상체 움직임을 본다.
안 좋을 때는 왼쪽 어깨가 너무 빨리 돈다.
매일 이 부분을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신인 투수는 던지는데 급급하다.
자신이 어떤 투수이고 투구 메커니즘이 어떤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다.
김택연은 정반대다.
최정을 상대할 때처럼 늘 차분하다.
위기에서도 흔들림이 없다.
빠른 주자가 출루하면 베테랑도 흔들리는데 김택연은 주자와 타자를 두루 묶는다.
지난 1일 잠실 LG전이 그랬다.
대주자 최원영에게 뛸 타이밍을 허용하지 않았다.
빠른 견제 모션과 더불어 투구 타이밍에 꾸준히 변화를 줬다.
10년차 구원 투수들이 하는 ‘홀딩’을 통한 타이밍 싸움을 신인이 해냈다.
이 또한 이전부터 준비했다.
김택연은 “고등학교 때 백청훈 투수코치님께서 이 부분을 많이 강조하셨다.
주자를 묶는 것은 투수라고 하셨다.
‘고개 돌리는 타이밍을 다르게 하라’, ‘견제 타이밍도 일정한 것보다 변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면서 “뛰는 야구가 대세다.
LG는 특히 많이 뛴다.
그래도 주자 1루와 2루는 천지 차이다.
그때 도루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실점 없이 이닝을 마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구위는 말할 것도 없다.
3월18일 젊은 대표팀과 LA 다저스가 맞붙은 고척돔 경기에서 주인공도 김택연이었다.
메이저리그(ML) 최강팀 다저스 타선을 속구 정면 승부로 삼진 처리했다.
그럴만 했다.
이날 김택연 속구의 분당회전수(RPM)는 ML를 기준으로 삼아도 최상급이었다.
RPM 최고 2483, 평균 2428이 나왔다.
다저스 투수를 포함, 이날 마운드에 선 투수 중 최고 수치를 찍었다.
놀라움의 연속이다.
지난해 9월 18세 이하 대표팀 소속으로 미국을 상대해 완봉투를 펼친 것을 시작으로 프로에서 보여준 모습 하나하나가 감탄을 내뱉게 만든다.
이승엽 감독은 김택연을 두고 “확실히 보통 선수는 아닌 것 같다”고 함박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김택연은 자신을 향한 찬사를 가슴 속에 묻고 다음을 바라본다.
김택연은 “칭찬을 들을수록 더 열심히 야구하고 야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차이가 크지 않나”며 “투수는 물론 타자도 관심이 있다.
적어도 상대하는 타자는 미리 알아본다.
스탠스가 열려있는지 닫혀있는지, 스윙 궤적은 레벨형인지 어퍼 블로우인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이렇게 매일 야구에 푹 빠지면 자연스럽게 목표에 닿지 않을까. 일단 올해 목표는 한국시리즈다.
꼭 한국시리즈에서 던져보고 싶다.
멋진 잠실구장에서, 우리 두산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마지막까지 야구하는 게 올해 가장 큰 목표”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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