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질문:‘묻지마 칼부림’에 대한 호신술은 도망가는 것만이 답인가?[노경열의 알쓸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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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구독자분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기셨다.

“알쓸호이 다음편 주제는 묻지마 칼부림 관련 절권도식 디펜스에 대해서 다뤄주셨으면 합니다.
나이프 디펜스 관련 영상에는 ‘칼들면 무조건 도망가라. 호신술은 다 구라고 사기다’, 이런 댓글이 많은데 도망갈 수 없는 상황에서 무기를 대처했을 때 절권도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굉장히 민감한 주제이고, 또 글만으로는 의미도, 방법도 제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근 흉기를 휘둘러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들이 또다시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만큼 3회에 걸쳐 ‘흉기에 대한 대처’, 특히 ‘묻지마 흉기 난동에 대한 대처’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민감한 주제이고, 자칫 오해하면 생명이 위험한 내용인 만큼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방법’ 등은 철저하게 배제하겠다.
그리고 글이 길어질 수도 있다.

달려서 도망가기.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필자 역시 이 호신술 칼럼에서 달려서 도망가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심지어 반드시 익혀야 할 기술 중 첫번째로 꼽았다.
그만큼 ‘기회를 포착했을 때, 재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능력’은 호신술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달려서 도망만 가면 ‘충분’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려서 도망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고, 나머지는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호신 기술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 너무 얕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그냥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로부터 도망을 잘 치기 위한 여러가지 달리기 방법을 제시했다.
(예 : 계단 빨리 내려가기 연습 등)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한들 그 연습 자체를 못 쓰는 상황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먼저, 나는 체구가 작고 연약한 여성인데, 키도 훨씬 크고 건장한 남성이 위협하는 경우. 피지컬의 차이 때문에 열심히 달려도 금방 상대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많다.



두번째, 평소 달리기 연습도 충분히 했지만, 하필이면 어딘가 다쳤거나 몸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 필자는 수련생들에게 “감기몸살에 심하게 걸려 병원이나 약국에 가는 도중에 괴한을 만나면 그대로 당할 거냐? 그러니 감기몸살이나 배탈 정도로 쉬지 말고 그 컨디션에서도 기술, 스피드, 파워 펼칠 수 있도록 나와서 수련해”라고 말한다.
이렇게 따로 연습하지 않으면, 컨디션과 부상 등등으로 인해 필요할 때 도망도 불가능하다.

세번째, 퇴로가 막혔을 경우. 처음에는 도망을 쳤지만, 막다른 골목 같은 곳으로 몰렸거나 혹은 처음부터 두 명 이상이 앞뒤 양쪽에서 나를 막아설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흔히 ‘상대가 한 명인 경우’만 생각한다.
격투 경기 등에서 1:1 승부만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이미지다.
길거리에서는 다수가 날 위협할 수 있다.
처음부터 도망을 못 가도록 에워싼 뒤 자신들의 목적을 취하려는 범죄는 비일비재하다.

네번째. 일반인들은 이 경우를 가장 상상하지 못한다.
만약,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나 이외에도 있다면? 내 부모님이, 내 아이가, 내 연인이 함께 있는데 나만 잘 달리면 위기에서 벗어난다고 볼 수 있을까?

구독자분이 언급한 것처럼 ‘묻지마 칼부림’ 사건을 가정해보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누군가 흉기를 꺼냈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나였다.
난 달리기 훈련을 충분히 해서 바로 뒤로 돌아 뛰었다.
그럼 그 가해자는 당신을 쫓아갈까, 아니면 바로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달려들까. 분명, 그 현장에서는 미처 피하지 못 해 큰 상처를 입거나 생명을 잃는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당신은 그런 참극이 일어난 뒤에 “난 살아남았으니까 됐어”라고 평온하게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상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역시 트라우마를 안고 고통 속에 살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그저 달리는 것만 연습한다고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도망보다는 내 몸을 내던져야 할 수도 있다.
만약,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똑같이 위기에 처한 다른 사람도 함께 도망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면,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위헙을 가하는 상대를 잠시 멈추게 하고 나를 추격하는게 어렵도록 만드는 간단하면서도 위력적인 호신술’을 익혔을 때 가능한 것이다.

“달려서 도망가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이상 듣지 말길.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은 스타트 연습만 따로 하기도 한다.
흉기에 대한 호신술의 첫걸음은 ‘달리기’보다는 흉기가 눈앞에 있는데도 공포로 몸이 굳지 않고 바로 움직이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달려도 스타트 실력이 떨어져 만년 2등인 선수가 있듯 아무리 잘 뛰어도 흉기를 보자마자 몸이 굳어버리면 그대로 생명을 잃는다.
호신술의 범위는 굉장히 넓고, 그 깊이는 굉장히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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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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