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 스토리]‘너무 열심히 했던’ 변현민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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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골프계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1990년 2월생인 변현민이 지난달 29일 하늘나라로 떠났다.
향년 34세, 너무 짧은 인생을 살았다.
지난해 뇌종양 수술 후 뇌수막염에 걸렸고, 올해 시력을 잃고 심한 두통에 시달린 끝에 결국 ‘하늘의 별’이 됐다.
같은 시기에 선수 생활을 한 김하늘은 충격이 너무 컸다.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선수들은 3일 교촌 1991 레이디스 오픈 1라운드에서 변현민을 생각하며 검은 리본을 달고 플레이를 했다.
의정부 출신이다.
KLPGA투어에 2승을 거둔 챔피언이다.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골퍼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프채를 잡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골프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니어 시절 연습라운드도 하지 못하고 대회에 나설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면서 골프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어머니 김금실 씨의 도움으로 골프를 계속했다.
‘엄마 캐디’로 유명했다.
2010년 정규투어에 합류한 이후 줄곧 어머니가 캐디백을 멨다.
캐디피를 절약하기 위해 방법이었다.
재능이 뛰어나진 않았다.
고1 때 처음 70대 타수를 기록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훈련이었다.
‘연습벌레’로 불렸다.
고3 때 정회원이 됐고, 3년 만인 2010년 KLPGA투어에 합류했다.
2011년 7월 KLPGA SBS투어 히든밸리 여자오픈에서 연장 승부 끝에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동안 ‘톱 10’ 진입조차 한 차례도 없던 시점에서 나온 엄청난 이변이었다.
2013년 6월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선 2승째를 수확했다.
‘깜짝 우승’ 이후 이렇다 할 성적이 없어 속을 태우다가 건재를 과시했다.
우승을 하기 위해 2라운드 때 입었던 옷을 갈아입지 않고 최종 3라운드에 나선 스토리를 곁들였다.
효녀였다.
상금은 모두 어머니께 드렸다.
우승 이후 더욱 겸손했다.
말단 직원에게도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전했다.
후원사 행사엔 자기 일처럼 열심히 도왔다.
투어에서 싫어하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그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2018년 정규투어 시드를 잃었다.
골프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이듬해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치열한 경쟁에 지쳤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먼저 떠난 뒤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했다.
언니도 시집 보내고, 엄마와 함께 생활했다.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았다.
인성이 좋은 선수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과 재능을 기부했다.
변현민은 일찍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그의 활짝 웃는 미소는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고통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즐거운 일만 가득하기를….
노우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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