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얻거나 멍에 쓰거나… ‘독이 든 성배’ 한국축구 감독 변천사 [S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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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부터 클린스만까지 13명
평균 재임 기간 단 19개월 그쳐
11개월 클린스만, 최단 불명예
잦은 사퇴·경질에 국내파 ‘희생양’
‘월드컵 4강’ 히딩크 영웅 등극
16강 벤투는 4년4개월 최장수
“계속되는 감독 잔혹사 끊으려면
韓축구 색 찾고 걸맞은 계획 필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남자 축구 역대 아시아 최고 성적 4위(2002 한일월드컵). 월드컵 원정 16강 진출 2회(2010 남아공월드컵·2022 카타르월드컵).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 한국 축구는 국제무대에서 빛나는 성적표를 쌓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한국 축구도 감독에게는 무덤과도 같다.
‘잔혹사’, ‘독이 든 성배’ 같은 수식어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작년 3월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역대 최고의 전력을 이끌며 지난달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을 정조준했지만, 무전술 및 선수단 관리 실패 등 논란 속에 준결승전 패배로 부임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지휘봉을 내려놨다.
◆경질·사퇴… 반복된 감독 잔혹사
대표팀 감독 자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예기치 않은 공석이 된 건 낯설지 않다.
2002년 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부터 클린스만 감독까지 사령탑 13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9개월’에 불과했다.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선임한 외국인 감독뿐 아니라 소방수 역할로 투입된 국내파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히딩크 감독 이후 2003년 취임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이듬해 예정됐던 아시안컵 준비 과정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1년 2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어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도 13개월 만에 경질됐다.
감독 잔혹사는 이어졌다.
2006 독일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히 단기 계약으로 선임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9개월간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월드컵 첫 원정 1승에 만족한 뒤 계약 연장 없이 한국을 떠났다.
4년 계약을 한 고(故) 핌 베어벡 감독은 2007년 아시안컵 3위에 그친 뒤 1년 1개월 만에 사퇴했다.
중도 사퇴나 경질은 자연스레 후임 감독의 희생으로 이어졌다.
국내파 감독이 이런 희생에 소모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예선 도중 조광래 감독(대구FC 대표이사)이 경질되자 최강희 감독(현 산둥 타이산)과 홍명보 감독(현 울산 HD)이 잇달아 빈자리를 채웠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소방수 역할로 투입된 홍명보 감독은 본선에서 ‘무승(1무2패)’ 수모 속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중도에 하차한 뒤엔 신태용 감독(현 인도네시아대표팀)이 뒤를 이었다.
홍 감독과 마찬가지로 월드컵까지 1년이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대표팀을 이끈 신 감독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1승2패) 이후 떠나면서 한국 축구는 또 하나의 국내 유능한 지도자를 잃었다.
◆역대 최고 히딩크, 역대 최악 클린스만
그렇다고 모두가 ‘새드 엔딩’은 아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히딩크 감독은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개막 6개월 전부터 선수들과 합숙하는 특혜도 누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원정 16강 진출을 지휘한 파울루 벤투 감독도 장수 감독이다.
‘빌드업’ 축구를 앞세운 벤투 감독은 본선 무대에서 우루과이, 포르투갈 같은 강호들과 점유율 대결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투 감독은 역대 감독 중 최장 기간(4년 4개월) 한국을 이끄는 기록을 썼다.
이들의 대척점에서 역대 최악의 대표팀 감독은 클린스만이 꼽힌다.
부임 후 11개월 만에 경질된 그는 1992년 전임 감독제 도입 이래 가장 단명한 사령탑이라는 불명예를 썼다.
9개월간 지휘봉을 잡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단기 계약을 다 채운 사례였다.
한준희 해설위원(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최악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팬들에 대한 기본적 존중 및 성실도 면에서부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면서 “전술은 둘째치고 직업윤리 및 공감능력이 결여됐고, 선수단 기강확립에서도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축구 철학 연구… 잔혹사 줄이자
이제는 감독 잔혹사를 끊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한국 축구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플랜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위원은 “대표팀이 시기별, 상황별로 무엇을 가장 필요로하는지 정교하게 연구해야 한다”며 “그에 따라 적절한 지도자를 영입한 뒤 합당한 인내력을 갖고 지원하는 3가지 단계별 과정을 잘 거치면 잔혹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한 위원은 “특히 현대적 축구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있고, 분석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선임해야 한다.
그래야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 젊은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의 비전을 제시하며 이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겠다는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단지 감독 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대표팀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술적 지속성을 위해 잦은 감독 교체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대표팀의 경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을 2018년부터 꾸준히 신뢰하면서, 빌드업 및 역습 축구라는 확실한 색깔이 정착됐다.
카타르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하며 굴욕을 맛본 일본은 모리야스 감독을 경질하지 않고 믿음을 다시 보이기도 했다.
한 위원은 “잠시 성적이 부진해도 내용과 비전에 있어 희망을 던져주는 지도자라면 믿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장한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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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재임 기간 단 19개월 그쳐
11개월 클린스만, 최단 불명예
잦은 사퇴·경질에 국내파 ‘희생양’
‘월드컵 4강’ 히딩크 영웅 등극
16강 벤투는 4년4개월 최장수
“계속되는 감독 잔혹사 끊으려면
韓축구 색 찾고 걸맞은 계획 필요”
하지만 이런 한국 축구도 감독에게는 무덤과도 같다.
‘잔혹사’, ‘독이 든 성배’ 같은 수식어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작년 3월 지휘봉을 잡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다르지 않았다.
클린스만 전 감독은 역대 최고의 전력을 이끌며 지난달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64년 만의 우승을 정조준했지만, 무전술 및 선수단 관리 실패 등 논란 속에 준결승전 패배로 부임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지휘봉을 내려놨다.
◆경질·사퇴… 반복된 감독 잔혹사
대표팀 감독 자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예기치 않은 공석이 된 건 낯설지 않다.
2002년 한일월드컵 거스 히딩크 감독부터 클린스만 감독까지 사령탑 13명의 평균 재임 기간은 ‘19개월’에 불과했다.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선임한 외국인 감독뿐 아니라 소방수 역할로 투입된 국내파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히딩크 감독 이후 2003년 취임한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이듬해 예정됐던 아시안컵 준비 과정에서 성적 부진을 이유로 1년 2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어 부임한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도 13개월 만에 경질됐다.
감독 잔혹사는 이어졌다.
2006 독일월드컵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긴급히 단기 계약으로 선임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9개월간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월드컵 첫 원정 1승에 만족한 뒤 계약 연장 없이 한국을 떠났다.
4년 계약을 한 고(故) 핌 베어벡 감독은 2007년 아시안컵 3위에 그친 뒤 1년 1개월 만에 사퇴했다.
국내파 감독이 이런 희생에 소모됐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예선 도중 조광래 감독(대구FC 대표이사)이 경질되자 최강희 감독(현 산둥 타이산)과 홍명보 감독(현 울산 HD)이 잇달아 빈자리를 채웠다.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소방수 역할로 투입된 홍명보 감독은 본선에서 ‘무승(1무2패)’ 수모 속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도중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중도에 하차한 뒤엔 신태용 감독(현 인도네시아대표팀)이 뒤를 이었다.
홍 감독과 마찬가지로 월드컵까지 1년이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대표팀을 이끈 신 감독도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1승2패) 이후 떠나면서 한국 축구는 또 하나의 국내 유능한 지도자를 잃었다.
◆역대 최고 히딩크, 역대 최악 클린스만
그렇다고 모두가 ‘새드 엔딩’은 아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히딩크 감독은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개막 6개월 전부터 선수들과 합숙하는 특혜도 누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2년 만의 원정 16강 진출을 지휘한 파울루 벤투 감독도 장수 감독이다.
‘빌드업’ 축구를 앞세운 벤투 감독은 본선 무대에서 우루과이, 포르투갈 같은 강호들과 점유율 대결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벤투 감독은 역대 감독 중 최장 기간(4년 4개월) 한국을 이끄는 기록을 썼다.
이들의 대척점에서 역대 최악의 대표팀 감독은 클린스만이 꼽힌다.
부임 후 11개월 만에 경질된 그는 1992년 전임 감독제 도입 이래 가장 단명한 사령탑이라는 불명예를 썼다.
9개월간 지휘봉을 잡은 아드보카트 감독은 단기 계약을 다 채운 사례였다.
한준희 해설위원(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역대 최악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팬들에 대한 기본적 존중 및 성실도 면에서부터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라면서 “전술은 둘째치고 직업윤리 및 공감능력이 결여됐고, 선수단 기강확립에서도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축구 철학 연구… 잔혹사 줄이자
이제는 감독 잔혹사를 끊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선 한국 축구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플랜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위원은 “대표팀이 시기별, 상황별로 무엇을 가장 필요로하는지 정교하게 연구해야 한다”며 “그에 따라 적절한 지도자를 영입한 뒤 합당한 인내력을 갖고 지원하는 3가지 단계별 과정을 잘 거치면 잔혹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한 위원은 “특히 현대적 축구 트렌드를 잘 이해하고 있고, 분석 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선임해야 한다.
그래야 눈높이가 높아진 요즘 젊은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축구협회가 한국 축구의 비전을 제시하며 이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겠다는 청사진을 밝혀야 한다.
단지 감독 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대표팀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술적 지속성을 위해 잦은 감독 교체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본 대표팀의 경우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을 2018년부터 꾸준히 신뢰하면서, 빌드업 및 역습 축구라는 확실한 색깔이 정착됐다.
카타르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하며 굴욕을 맛본 일본은 모리야스 감독을 경질하지 않고 믿음을 다시 보이기도 했다.
한 위원은 “잠시 성적이 부진해도 내용과 비전에 있어 희망을 던져주는 지도자라면 믿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장한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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