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를 봄 배구 좌절 위기에서 구해낸 ‘신인왕 0순위’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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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마추어 시절에서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였다고 하더라도 차원이 다른 수준인 프로 무대에서 곧바로 주전으로 뛰기란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 그래서 데뷔하자마자 프로 무대를 씹어먹는 신인들을 우리는 ‘괴물’ 등의 수식어를 붙여주곤 한다.
프로배구 V리그 출범 초창기만 해도 남자의 경우 대학교 4학년, 여자의 경우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곧바로 주전을 차지하는 선수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V리그가 20주년을 맞이한 현재,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힌 신인들이 주전으로 뛰는 경우를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리그가 시즌을 거듭하면서 많은 선수들이 쌓이면서 신인들이 이들을 제치기가 쉽지 않아졌다.
올 시즌부터는 아시아쿼터 제도까지 도입되어 신인들이 뛸 수 있는 기회를 잡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전체 1순위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은 김세빈이다.
김세빈은 1m87의 좋은 신장을 갖춘 데다 올 시즌을 앞두고 정대영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뒤 GS칼텍스로 이적해 사실상 무주공산이었던 도로공사 미들 블로커 한 자리를 꿰찼다.
김종민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출장기회를 얻고 있는 김세빈은 세트당 0.545개의 블로킹을 잡아내며 전체 5위에 올라있다.
반면 남자부의 경우에는 주전 자리를 꿰찬 신인이 전무하다.
전체 1순위로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이윤수는 고작 4경기 출장해 2득점이 전부다.
1라운더 중엔 출전 기회를 단 한번도 부여받지 못한 2순위 김형근(우리카드), 7순위 김진영(현대캐피탈)도 있다.
나머지 1라운더들도 코트를 밟아보긴 했어도 팀에서 큰 비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왕 투표의 고민을 지워줄 신인이 그래도 한 명은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신인은 소속팀이 봄배구를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걸린 한 판 승부에서 주전 세터로 출전해 팀 승리를 이끌어냈다.
2라운드 7순위, 전체 열 네 번째로 이름을 호명받아 삼성화재 유니폼을 입은 세터 이재현(22)이 그 주인공이다.
세터임에도 펀치력과 미팅 능력을 앞세운 강서브가 일품인 이재현은 원포인트 서버로 나서다 지난 1월19일 우리카드전에서 데뷔 첫 선발 출장 기회를 잡았고, 경기운영은 다소 미숙하지만 담대한 경기운영으로 삼성화재의 3-2 승리를 이끈 바 있다.
이후 다시 백업 자리로 돌아간 이재현은 2월 후반부터는 주전으로 나서는 빈도가 많아졌고, 3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OK금융그룹과의 6라운드 맞대결에서 다시 선발 세터로 낙점됐다.
김상우 감독은 이날 노재욱을 아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고, 세터로는 이재현과 이호건만 경기장에 데려왔다.
김 감독의 선택은 이재현의 선발 출전이었다.
김 감독은 경기 전 “(이)재현이가 아직 신인이라 경험이 부족해 운영 면에서 노련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리시브가 흔들리거나 수비로 공을 걷어올린 이단연결 상황에선 부지런하게 뛰어들어가 어떻게든 공격을 만들어내려 한다.
(노)재욱이가 잘 해주지 못하는 것을 이재현이 해내는 부분이다.
그 부분을 믿는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기가 시작되자 이재현은 김 감독의 믿음대로 담대한 운영을 뽐냈다.
이날 삼성화재는 비 시즌 동안 김 감독이 베스트 라인업으로 구상했던 아시아쿼터 에디(몽골)이 아포짓 스파이커로, 요스바니 에르난데스가 김정호와 함께 아웃사이드 히터로 나서는 공격지향적인 라인업으로 나섰다.
요스바니가 아포짓으로 나설땐 40% 후반 대에서 50%를 넘나드는 점유율을 가져가야 했다.
이 전술은 이제 노출되어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이날은 요스바니가 혼자 팀 공격을 전부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
에디가 34.86%, 요스바니가 32.11%를 책임지며 좌우에서 고른 공격 분배를 가져갔다.
시즌 초반 아포짓으로 나서지 못하고 미들 블로커를 전전했던 에디는 대학 시절부터 가장 오래 뛰어온 포지션인 아포짓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재현의 백토스는 어김없이 에디에게 향했고, 에디는 이재현의 기대에 부응하며 서브득점 3개 포함 팀 내 최다인 25점을 올렸다.
공격 성공률은 57.89%였다.
OK금융그룹 서버들의 목적타 타겟이 된 요스바니는 리시브 부담 때문에 공격 성공률은 42.86%에 그쳤지만, 전매특허인 강서브는 여전했다.
서브득점 6개 포함 21점을 올리며 에디의 뒤를 받쳤다.
이날 승리로 이재현은 사실상 신인왕을 확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2연패에서 벗어나며 승점 3을 추가한 삼성화재(승점 48, 18승15패)는 한국전력(승점 47, 16승17패)을 5위로 밀어내고 4위로 올라섰다.
아울러 2019년 3월5일 이후 5년 동안 안산 원정에서 당한 연패를 ‘13’에서 끊어냈다.
1825일 만의 안산 원정 승리다.
반면 이날 경기에서 이겼다면 준플레이오프(3,4위 간 승점 3 이내)를 없애며 플레이오프 직행을 꿈꿀 수 있었던 3위 OK금융그룹(승점 52, 18승15패)은 이날 패배로 여유가 사라졌다.
경기 뒤 수훈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이재현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팬이 선물한 꽃다발을 들고 인터뷰실에 온 그는 “삼성화재가 몇 년 동안 상록수체육관에서 지기만 했다고 들었다.
올 시즌 마지막 OK금융그룹전에서 승리를 따냈다.
징크스도 깨고 좋은 날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재현에게 프로 무대의 벽은 어떻게 느껴졌을까. 이재현은 “프로 무대는 블로킹 높이나 서브 세기가 대학 때와는 아예 달라서 처음엔 긴장도 많이 하고, 당황도 많이 했다.
덤벙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적응해서 덤벙대는 게 줄었다.
상황에 따라 어디로 공을 올려야 할지도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라면서 “조금 여유가 생기니 처음엔 잘 맞지 않았던 공격수 형들과의 높이도 이젠 잘 맞아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하면 삼성화재의 봄배구 진출 가능성이 사실상 물거품이 되는 상황이었다.
어깨가 무거울 법도 했지만, 이재현의 경기 운영은 합격점을 줄만 했다.
이재현은 “요스바니가 아웃사이드 히터로 들어와 리시브 부담이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목적타를 많이 받기에 에디를 많이 쓰려고 했다.
리시브가 잘 되어 전달되면 다른 공격수들도 활용하면서 상대 블로킹을 분산시키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제 신인왕의 고지가 보인다.
신인 중 유일하게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이재현 역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제가 2라운드에 뽑힌 선수라 올해는 큰 욕심 부리지말고 적응하고 맞춰가자는 마음이었다”라면서도 “주변에서 신인왕 관련된 얘기도 많이 해주고 하니까 욕심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세터 중에서도 단신에 속한다.
전위에 올라오면 블로킹 약점이 있기 때문에 토스워크와 경기운영이 빼어나야만 주전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그의 롤모델도 단신 세터였다.
이재현은 “다른 선배 형들의 경기운영을 보고 많이 배우는데, 특히 KB손해보험의 황승빈 형을 많이 본다.
(황)승빈이형은 키가 그리 큰 편도 아닌데(황승빈의 신장은 1m83) 토스 구질이나 속공 활용, 노련미가 좋은 세터같다.
그래서 많이 보면서 많이 배운다”라고 설명했다.
이재현은 인터뷰 말미에 현재 삼성화재 선수단 분위기를 전하며 봄배구를 향한 각오도 다졌다.
그는 “초반에 잘 하다 후반기들어 떨어지면서 선수들도 지쳐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치님들이 ‘초반에 아무리 잘해도 마지막 마무리가 좋지 않으면 아무도 안 알아준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미팅 때 선수들끼리 끝까지 해보자고 얘기한다.
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 해서 봄배구 진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안산=남정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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