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질 전부터 후보 이름이 왜 나오나? 무너진 감독 선임 시스템의 민낯, 주먹구구식으로 전락한 축구협회[SS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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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시스템을 회복하지 않으면 ‘클린스만 사태’는 반복된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인해 발생한 ‘잃어버린 1년’은 협회가 자초한 참사다.
정몽규 회장은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낙하산 인사’였다.
당시 위원회 일부 위원은 클린스만 감독 선임 발표 직전에야 소식을 듣기도 했다.
사실상 위원회가 마비된 상태였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는 지도자 선임과 해임, 재계약 관련 업무를 주로 하는 조직이다.
2021년 정관 개정에 따라 ‘조언 및 자문’ 수준으로 격하했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분과위원회다.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가 아니라면 최소한 기술발전위원회 논의를 거쳐 후보를 확정해야 한다.

문제는 위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황당하게도 클린스만 감독 경질이 확정된 16일 전부터 새 사령탑에 관한 여러 메시지가 협회 내부에서 쏟아져 나왔다.
‘무조건 국내 감독으로 간다’는 의견이 등장했고, 울산HD 홍명호 감독, FC서울 김기동 감독, 제주 유나이티드 김학범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 구체적인 후보까지 거론됐다.
이제 국내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 게 기정사실인 분위기다.

15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의에서는 차기 후보에 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클린스만 감독의 실책을 평가하고 경질로 의견을 모으는 데 국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후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협회 내부의 여러 주요 인사가 각자의 목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3일 임원 회의를 시작으로 후보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완벽하게 붕괴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협회는 원래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를 운영했다.
김판곤 현 말레이시아 감독이 위원장을 맡아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각급 대표팀 지도자를 선임했다.
위원장 홀로 선임한 게 아니라 내부 위원들과 꼼꼼하고 철저하게 소통해 후보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사실상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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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체제에서 지휘봉을 잡은 이들은 나름의 성과를 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 16강을 이뤄냈고, 김학범 당시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화답했다.
김판곤 위원장 체제에서 사령탑이 된 김은중 전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4강이라는 대기록을 견인했다.

이 좋은 시스템을 협회는 스스로 폐기했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는 사라졌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권한은 축소됐다.
그렇게 등장한 인물이 바로 클린스만 감독이다.
회장 한 명의 직감과 판단으로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축구가 자랑하던 황금세대를 수렁에 빠뜨렸다.
주먹구구식 감독 선임이 초래한 ‘인재’였다.

현 상태라면 결국 치밀하고 꼼꼼한 절차를 거치는 대신 회장이나 일부 목소리가 큰 임원의 주장에 따라 후보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단순히 감독의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다.
협회 일부 관계자 말대로 선수들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서를 잘 아는 한국 지도자가 사령탑을 맡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표팀 붕괴는 결국 협회의 안일한 인사가 초래했다.
이 시점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시스템을 회복하는 것이다.
다음 달 월드컵 2차 예선을 시작하기 때문에 대표팀 감독을 빠르게 선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감독을 영입하는 과정부터 새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구축하지 않으면 또 악몽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직감이 아닌 시스템, 집단 지성의 판단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을 정 회장부터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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