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정승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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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황희(黃喜) 정승의 근육량(筋肉量)이 당시 황소(黃牛)의 여덟 배에 달하였으며, 웬만한 장수(將帥)들은 맨손으로 찢어버릴 만큼 강하였다고 전한다. 이에 학자들은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황희 정승의 기괴한 육체의 비밀을 밝혀냈으니, 그것은 곧 마이오스타틴(肌肉抑制素)의 결핍으로 인한 근육 비대(筋肉肥大) 현상이었다.


즉, 황희 정승은 선천적으로 마이오스타틴의 분비가 적었으며, 이에 따라 수십 년간 발달해 온 근육량과 고밀도로 압축된 근섬유로 인해 범인(凡人)이 따를 수 없는 괴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당시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였던 장영실(蔣英實)의 증언에 따르면,


"자격루(自擊漏)를 완성할 즈음, 영의정(領議政)께서 찾아오시더니 자격루의 왼쪽 쇠기둥을 뽑아 두 동강을 내시며 말씀하시길, ‘더욱더 강한 재질을 쓰고, 두껍게 만들라’고 명하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황희 정승의 부친 황군서(黃君瑞)는, 세 살 된 황희의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는 단단한 육체와, 집안 하인 수기(守己)의 손목을 한 번에 으스러뜨릴 만큼의 악력(握力)을 보고 그를 무인(武人)으로 기르려 하였다. 그러나 부인의 만류(挽留)와, 황희가 열 살 무렵 스스로 심신의 단련을 멀리하고 학문을 택함으로써, 무인의 길을 포기하고 문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그 특유의 체질로 인해, 황희 정승의 육체는 여전히 발달을 거듭하였다.


김종서(金宗瑞) 장군의 기록에도 황희 정승의 무력(武力)이 나타나 있다.


김종서가 함경도 관찰사(咸鏡道 觀察使)로 있을 때, 황희 정승이 방문하여 함께 압록강(鴨綠江) 부근을 둘러보던 중, 북방 오랑캐의 자객 열댓 명이 기습하였다.


이에 김종서 장군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소인이 왼팔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 오랑캐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였으나, 정승께서 놀랄 겨를도 없이 기습한 오랑캐들을 맨손으로 찢어 죽이시고, 칼을 맞대고 있던 오랑캐의 뒷덜미를 그러쥐고 목을 맨손으로 뽑아 죽이셨습니다. 소인도 믿기 어려운 일이란 것을 알지만, 전하께서 항시 정승을 곁에 두신다면 어떤 자객도 전하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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