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의 눈물과 기자의 내적 갈등, 그리고 엘리슨과의 명승부[정다워의 미드섬머인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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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파리=정다워 기자] 앞서가던 스페인 선수 부상으로 기권. 안세영에게 호재, 우주의 기운이 모인다.
4일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 샤펠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4강전에서 카롤리나‘ 마린(스페인)이 부상으로 쓰러져 기권한 후 내가 쓴 기사 제목이다.
호재가 맞다.
마린 대신 결승에 오른 허빙자오(중국)는 이날 경기에서 완패 분위기였다.
경기력 면에서 마린이 훨씬 나았다.
부상 변수가 아니었다면 마린이 승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마린은 2016 리우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세계 랭킹도 마린이 4위, 허빙자오가 9위로 차이가 난다.
먼저 결승에 오른 안세영에게는 좋은 소식이다.
기사를 써놓고 나니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마린이 코트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마린은 배드민턴계에서 악명이 높은 편이다.
과하게 소리를 치는 ‘오버액션’으로 인해 비호감도가 높다.
그래도 마린 역시 이 올림픽을 위해 4년간 땀 흘리며 준비했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현장의 관중도, 심지어 어부지리로 결승에 가게 된 허빙자오조차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에 오면 취재진도 어느 정도 몰입하게 된다.
내심 한국을 응원하고 메달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마린의 부상이 안세영에게 호재라는 점을 기사로 표현해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천위페이 이어 4강서 이기던 스페인 선수까지 안타까운 부상 기권…안세영 결승 상대는 하위 랭커 중국 허빙자오’라는 비교적 건조한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같은 날 양궁 경기가 열리는 레쟁발리드에서는 잊지 못할 명승부가 열렸다.
김우진과 브래드 엘리슨(미국)의 개인전 결승에서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두 선수 모두 5세트에 30점을 쏴 비기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슛오프에서는 겨우 4.9㎜ 차이로 김우진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두 선수 모두 후회 없는 싸움을 했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도, 보는 입장에서도 진한 카타르시스를 안기는 경기였다.
그래서인지 경기 후 은메달을 딴 엘리슨은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경기 중에는 한없이 얄미워 보였던 그가 공동취재구역에서 가족과 조우해 깊은 감상에 빠지는 모습을 봤다.
어린 아들은 그의 품에 안겨 은메달을 만지작거렸고, 엘리슨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었다.
올림픽이 주는 감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문득 마린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린이 다치지 않고 정상적으로 결승에 진출해 안세영과 격돌, 명승부를 벌였다면 어땠을까. 김우진과 엘리슨처럼 명승부 끝에 안세영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면 더 멋진 그림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부상은 불가피하지만, 현장에서 누군가가 다치는 장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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